People and Culture

서울에서의 4일, 별내에서의 3일

위스테이별내 입주자 인터뷰
이경래 님

[옆집 사람] 생텍쥐페리의 말처럼, ‘사이’라는 건 서로 떨어져 있는 거리로 측정되는 게 아닌가 보다. 가까이 있어도 먼 사이가 있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이웃들이 그렇다. 인사를 한다든가 안부를 묻는 대신, 경계 어린 눈빛으로 서로를 살핀다. 아파트형 마을공동체, 위스테이는 바로 그런 점에서 달랐다. 얼굴도 모르는 내게 먼저 인사를 건네는가 하면, 해 질 무렵에는 단지 안이 자전거 타는 아이들로 복작였다. 순간 단지 전체가 하나의 커다란 집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간 디자이너이자 지속 가능한 환경을 고민하는 활동가인 이경래 님은 별내에서의 생활을 차차 늘려 가겠다고 말했다. 요즘 사람들은 집 밖으로 나가려 안달인데, 그는 벌써 자기만의 루틴을 만들었다. 입주 후 계절 하나가 지났을 뿐이지만 안부를 물어오는 친구도 생겼다. 처음 이 얘기를 들었을 때 집에서 보내는 3일은 얼마나 지루할까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그 집은 침실이 놓인 공간이 아니라 위스테이 단지 전체와 이곳 사람들을 의미하는 거였다.

Q. 웰컴 드링크로 토마토 주스를 받아 보기는 처음이네요.

생명역동농법이라는 방식으로 재배된 토마토로 만들었어요. 첨가물 하나 없는, 100% 토마토주스인데요, 기왕이면 건강한 걸 먹어야죠. 자랑하는 거예요.(웃음)

Q. 웰컴 드링크에서부터 확고한 취향이 느껴지는데요? 공간도 그렇고요.

공간 디자인을 업으로 삼고 있어요. 아이들 놀이터에서 도서관 같은 실내까지, 다양한 공간을 디자인해요. 나아가 지속 가능한 사회와 손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능력에 대한 내용을 프로그램으로 만들어 강의도 하고요. 대략 20년 정도 지속해온 것 같네요.

Q. 공간 디자이너라고 하시니 내부 인테리어가 왜 이렇게 감각적인지 알 것 같아요. 주거 역사도 독특하실 것 같은데, 첫 독립은 언제였나요?

고등학교 때 처음 집을 나왔어요. 시골에 살다 도시로 전학을 가게 되어 한 칸짜리 전셋집을 얻었죠. 처음에는 내 방을 가진다는 사실에 설렜는데, 일주일도 안돼서 우울해졌어요. 누군가와 치열하게 경쟁해야 하는 도시 생활에 적응하기가 힘들었거든요. 전에는 마을 안에서 모두의 보살핌을 받으며 자랐으니까요.

그 이후 꽤 오랜 시간을 누군가와 함께 살았어요. 대학 시절에는 후배들, 친구들과 함께 살았고요. 장기간 해외출장을 나가는 큰 형의 부탁으로 형의 신혼집에서 살기도 했어요. 역곡에 있는 아파트였는데, 아파트에서의 첫 생활이었죠. 조카가 크면서 자기만의 공간이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집을 나왔어요. 재밌는 건, 육아라는 관심사로 뭉쳤던 같은 라인 사람들과 여전히 연락이 닿는다는 거예요. 지금도 그 모임이 유지되고 있고요. 그때의 아기들이 지금은 군대가고 대학도 갔어요.

그리고 부천, 종로 5가, 수유리, 경리단길, 숭인동에 이르러 별내까지 왔네요. 사회 초년생 때 다니던 인테리어 회사를 그만두고 저로서도 다양한 시도를 했던 시기에요. 대학원에 들어가 그린 디자인을 배우고, 관련된 사업을 해보기도 하고요. 타인에게 말하기만 할 게 아니라, 내가 먼저 실천해야 한다고 생각해 카드, 보험도 없애고 의, 식, 주, 영의 네 가지에서 자립하는 연습을 했던 적도 있죠. 돌이켜보니 꽤 다양한 곳에 살았네요.(웃음)  

Q. 학창 시절부터 오랜 시간 스스로를 책임지고 있는 모습이 멋있어요. 공간 디자이너로서 잘 아시겠지만, 공간은 우리 삶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거든요. 지금까지 주거 형태가 계속 바뀌어 왔는데, 어려움은 없었나요?

위스테이에 오기 전까지는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요. 사실 여기에 온 것도 집이 아니라 사람 때문에 온 거니까. 제가 태어나고 자랐던 시골집은 되게 작았거든요. 오히려 집이 커질수록 짐도 늘어나더라고요. 원래는 단출했는데 위스테이에 살면서 공간을 채우다 보니 사고, 만든 것들이 많아요. 이제 다른 데 이사 못 갈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웃음)

Q. 집에 처음 들어섰을 때 가구, 소품, 배치에서 진한 ‘나다움’이 느껴지더라고요. 지금은 이렇게 취향이 깃든 공간에 살고 계신데, 자기만의 내밀한 공간도 중요했을 것 같아요.

개인적인 공간은 지금의 침실 정도 크기면 충분해요. 남은 공간은 저에게 열려 있지만,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들에게도 열려 있죠. 물론 디자이너로서 자기만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도 맞아요. 의자에 앉아 계절에 따라 변하는 바깥 풍경을 보고 있으면 저도 모르게 위안이 되거든요.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지만, 그 이상으로 혼자만의 시간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늘 열심히 살아야겠다, 사람들과 소통해야겠다라고만 생각하며 살았는데 창밖의 풍경이 나를 위로해 주는 것을 느끼면서 바깥으로 에너지를 분출하는 것만큼이나 나도 보살펴야겠다고 다짐했죠.

여기에 있는 가구며 집기들은 모두 저를 위한 보상이에요. 말하자면 사치죠. 솔직히 음악이나 영화를 즐기면 얼마나 즐긴다고요. 더 좋은 곳에 써야 하는데 내가 사치를 부렸다는 생각도 들고, 창피한 마음도 생겨요. 내가 가진 것이 과하다는 생각도 들고요. 이 이상은 하지 않으리라 다짐하지만, 어디까지나 다짐일 뿐입니다.(웃음)

Q. 프리랜서로 일하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어요. 집에서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을 것 같은데, 주로 어떤 걸 하면서 보내세요? 주기적인 루틴이 있을까요?

아침에 일어나 노래를 틀어 놓고 의자에 앉아 창밖 풍경을 감상해요. 그리고 자전거를 타러 나갑니다. 몸이 적당히 달아오르는 저만의 코스가 있어요. 주말에는 자전거를 타고 성당엘 가고요. 산에 가기도 해요. 지금은 마을을 정찰하는 단계에 있어요. 나에게 맞는 일상을 찾으려고요. 어느 정도 자리가 잡히면 마을 사람들과 어떤 일을 도모할지 고민해 봐야겠죠.

Q. 공간 디자인은 들쭉날쭉한 업무가 많은 걸로 알고 있는데, 그 속에서도 자기만의 루틴을 만드는 건 쉬운 일이 아닐 것 같아요. 어떤 계기로 이 업을 택하신 거예요?

원래는 시각 디자이너가 꿈이었어요. 그런데 저는 색약을 가지고 있거든요. 디자이너에게 색약은 엄청난 핸디캡이잖아요. 대학에 입학 하려면 신체검사를 해야 했는데, 색약은 통과할 수 없었어요. 대신 조각을 선택해 조각가로 살아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그러다 고정적인 수입을 벌 수 있는, 안정적인 직장을 얻으려고 실내건축 인테리어를 공부했죠.

 스스로를 책임져야 하는 형편 때문에 대학원에 진학하는 대신, 서울에 위치한 인테리어 회사에 취직했어요. 처음에는 강남 한복판에서의 직장 생활이 되게 멋있어 보였는데, 어느 날 쇼윈도에 비친 제 모습을 보니 너무 창피하더라고요. 나로 살고 있는 게 아니라, 소모품이 된 것 같아 초라한 기분이 들었어요. 흙먼지를 뒤집어쓰며 일했을 때도 그렇게 수치스럽지는 않았는데 말이에요. 회사를 그만두고 방황을 하다가 대학원에서 그린 디자인을 배웠어요. 공간에 자연을 생각하는, 그린의 개념을 입히는 계기였죠.

Q. 개인적으로 공간 디자인이라고 하면 멋스러운 카페가 먼저 떠오르는데요, 환경과 지속 가능성을 생각하신다는 것이 인상적이었어요.

요즘 기후 위기, 전염병 등 전 지구적인 위기가 출몰하고 있잖아요. 이런 상황 속에서 나를 포함한 인간이 지속 가능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있어요. 꽤 오랫동안 이것을 주제로 강의나 워크숍을 하며 지구 위기를 알렸죠. 무언가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행복이 담보돼야 하고, 미래에 대한 불안이 없어야 해요. 나아가 능동적으로 삶을 영위할 수 있을 때 그것이 가능하겠죠. 그래서 저는 ‘핸드메이드 라이프’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손으로 만드는 행위가 내면에 잠들어 있는 다양한 능력을 끌어낼 수 있다고 믿거든요.

아이들을 대상으로 ‘편리한 건 달콤합니까?’라는 슬로건을 내세운 환경운동을 하기도 했어요. 사람의 역사는 편한 것만 좇았던 역사고, 불편한 걸 편한 쪽으로 바꿔온 역사잖아요. 문제는 인간만 편해졌다는 거죠. 내가 건강하기 위해서는 동식물도 건강해야 해요. 나의 편안함으로 누군가는 불편을 겪을 테니까요. 그래서 멸종 위기 동물을 새긴 달고나를 만들어 이들을 구출하는 내용의 활동을 했어요. 살금살금, 달콤함 안에 갇힌 동물들을 온전하게 구출하기란 쉽지 않겠죠. ‘그래, 타자를 생각한다는 건 힘들어. 조심해야 해, 특히 다른 생명체를 생각한다는 건 정말 힘든 거야’라는 메시지를 주고 싶었어요. 평소에도 그 불편함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도 있었고요. 이런 태도가 요즘의 환경 위기 시대에 가장 중요한 마음가짐인 것 같아요.

Q. ‘편리한 건 달콤합니까?’라는 표현이 멋져요. 조곤조곤, 뼈 때리는 말 같달까.(웃음)

제가 환경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쓰지 말자는 것이 아닌, 조금 불편하게 살자는 거예요. 내 행동이 바로 결과로 나타나진 않겠지만, 각자의 삶 속에 선순환 구조를 갖추자는 거죠. 위스테이별내에 와서 하고 싶었던 것도 바로 그런 움직임이에요. 바깥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최소화하면서 자립하는 거죠. 무조건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을 통해 자급자족하는 거예요. 일례로 ‘반찬 나눠먹기’를 생각해 본 적 있어요. 공유 냉장고를 만들어 남는 반찬을 넣어두고, 소정의 가격에 판매하는 거죠. 물론 수익금은 공동체에 환원시키고요. 위생, 유통기한 문제로 실현되기 힘들겠지만, 환경을 생각하는 분위기와 뉘앙스가 조성됐으면 좋겠어요.

Q. 그러고 보니 인터뷰를 하면서 특히 ‘자급자족’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겉모습은 아파트 단지인데 ‘마을’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도 인상적이었고요. (웃음)

공동체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자급자족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어린 시절의 기억을 돌이켜보면 마을 사람들이 서로를 보살펴줬어요. 혼례와 장례는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는 축제였죠. 먹을 것을 나누기도 하고요. 생활에 필요한 대부분의 것들이 공동체 안에서 충족됐던 것 같아요.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는데요, 나아가 그렇게 자란 아이가 나의 미래를 책임져준다고 생각해요.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노력과 배려, 관심이 실은 날 위한 것이지 남을 위한 것은 아니거든요. 그 아이가 자라 건강한 사회를 만들 거고, 그 사회에 기대 노년의 시간을 보내겠죠. 그래서 이 헌신은 보이지 않는 먼 미래를 위한 희생이 아니에요.

Q. 아직 이르긴 하지만, 전에 살던 곳과 비교했을 때 느껴지는 차이가 있나요? (웃음)

친구들이 생겼어요. 가지고 있는 걸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해요. 바깥에 놓인 평상이 저희 아지트예요. 제가 혼자라는 걸 알고 종종 반찬도 갖다 줘요. 감사한 마음에 저도 하나라도 더 드리죠. 무엇보다 내 안부를 궁금해하고 걱정해 주는 사람이 생겼다는 사실이 가장 좋아요. 동아리 활동으로 만나는 분들, 도서관 사서분들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고요. 생각해보면 비슷한 사고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 있기에 관계의 장벽이 비교적 낮은 것 같아요.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겠지만요.

Q. 아파트를 돌아다니면서 이곳이 경직된 공간이 아닌, 활기를 띠고 움직이는 유기체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사는 곳에서는 옆집 사람과 친구가 된다는 걸 상상하기 힘들거든요. (웃음)

서울에서 바쁘게 일하고 아파트 단지에 들어서면 이곳이 나를 안아준다는 인상을 받아요. 중앙의 잔디광장을 중심으로 둥그런 구조가 마치 포옹해주는 것 같거든요. 게다가 아이들이 신나게 뛰어놀고, 집집마다 불이 켜져 있으면 되게 따스해요.

저는 위스테이에 사는 것이 혜택이라고 생각해요. 근데 혜택에는 의무가 따라요. 이곳은 첫 번째 공동체 아파트잖아요. 공동체로서의 삶을 시험하는 무대고요. 우리는 그 삶에 협조해야 한다고 느꼈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저처럼 이곳에 사는 사람들과 일하는 사람들의 한 걸음 한 걸음이 신뢰할 수 있고, 배려가 담긴 것이었으면 좋겠어요. 처음에는 그런 열정과 고민으로 서둘렀는데, 사람들이 이상한 사람이라고 하더라고요.(웃음) 완급조절을 하고 있어요.

Q. 혜택은 항상 누리는 것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의무가 따른다고 말씀하신 부분이 와닿네요. 경래님의 환경과 관련된 생각과도 비슷한 구석이 있는 것 같아요. 안 그래도 네이버 카페로 모니터링을 하면서 공동체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이 조금씩 다르다는 걸 느꼈어요.

우리 모두는 공동체로 사는 것을 합의하고 입주한 거예요. 그런데 종종 위스테이를 자산으로 여기고 손해 볼 수 없다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면 속상해요. 이곳의 목적은 그게 아니잖아요. 이벤트를 해도 쉬고 싶은 사람이 있겠죠. 그래도 사람들을 결속시켜주는 행사는 필요하다고 봐요. 실제로 이를 즐기는 분들이 더 많기도 하고요.

층간 소음 문제도 마찬가지예요. 뛰어노는 아이가 남이 아니라, 내가 아는 아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질 테죠. 민원이 민원으로만 해결될 게 아니라, 결국 안아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Love is touch, touch is love 라는 노랫말이 있거든요. 그러니까 만지고, 포용해야 해요. 만지는 것도 너무 과하면 폭력이 되겠죠. 그래서 어떻게 포용할지에 대한 고민도 필요한 것 같아요. 그런 사람들을 배제할 게 아니라, 끌어안을 수 있도록요.

먼저 진한 녹색을 만들어 놓으면, 다른 색이 들어와도 녹색처럼 보이겠죠. 점점 그렇게 물들 거예요. 그래서 밑바탕이 중요한 것 같아요. 조금은 바뀔 수 있겠지만, 기본이 있으면 흔들림은 덜 할테니까요. 그게 중요해요. 서로 신뢰할 수 있는 너른 관계가 형성된다면 우리는 훨씬 두터워지지 않을까요?

Q. 그런 점에서 지금은 서로의 다름을 나누고, 조율하는 과정에 있는 것 같아요.

8년 안에 성공하지 못할 수도 있어요. 생각보다 짧은 기간이거든요. 하지만 여기에서 공동체로 산다는 것 만으로도 제 인생에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Q. 지인들에게 위스테이와 같은 공동체 주거를 추천해 줄 의향이 있으세요?

지금도 많이 추천하고 있어요.(웃음) 제가 경험했던 역곡의 아파트처럼, 여전히 작은 공동체를 이뤄 사는 곳도 있을 거예요. 모든 구성원이 그렇게 하기 힘들어서 그렇지. 아파트가 부 축적의 대상이 된 것도 한몫하는 것 같고요. 그래도 저는 이런 생활을 경험해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Q. 개인적으로 위스테이에 살아보고 싶다고 느꼈던 부분 중 하나는 동아리였어요. 현재 막걸리 소모임도 하고 계시다고요.

사실 막걸리 학교에 들어가게 된 건 순전히 이사장님 때문이에요. 어느 날 집으로 직접 담근 막걸리를 들고 찾아오셨는데, 너무 맛있어서 저도 담고 싶다고 말해 들어가게 됐어요. 어느 날은 수업에 조금 늦게 도착했는데, 위원장을 뽑아야 한다고 하면서 다들 저를 가리키더라고요. 제가 오기 전에 말을 맞춘 것 같아요.(웃음)

조합에서 우리에게 막걸리를 배우게 해준 이유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십시일반 그 의무를 해야겠죠. 공동체 잔치나 조합 손님이 왔을 때 우리 마을에서 만든 것이라며 공유 주방의 발효실에서 술을 내어줘요. 막걸리 학교가 단순히 취미 활동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수익을 낼 수 있으면 좋겠어요.

Q. 저도 요즘 전통주에 빠졌는데, 그중 막걸리가 가장 재밌어요. 스펙트럼이 넓다고 해야 할까요.

오늘 아침에도 막걸리를 담았어요. 한 번 드릴까요?(웃음) 인터뷰가 끝나면 한 번 놀러 오세요. 언제든 환영이에요. 우리 집은 전부터 어머니가 막걸리를 담그셨어요. 그래서 시중에 있는 막걸리를 잘 안 먹게 됐죠. 이렇게 담가 먹으면 더 좋아요.

막걸리는 발효된 거예요. 그래서 보통의 술과 달라요. 이 안에는 살아있는 효모가 들어 있거든요. 건강을 마시는 거죠. 아까 절약해야 한다고 말하긴 했지만, 요즘 김치냉장고를 사려고 고민하고 있어요. 가지고 있는 냉장고가 너무 오래돼서요.(웃음) 현재는 막걸리뿐 아니라 누룩도 직접 발효하고 있어요.

Q. 아파트 안에서 동아리 활동을 한다는 게 신기하기도 해요.

처음이라 잘 모르겠어요. 어떤 활동들은 주로 저녁에 이뤄져서, 저녁이 보장되는 사람이 아니라면 부담스러울 것 같아요. 모임을 이끌다 보니 문도 내가 열어야 하고, 임의로 시간을 조율할 수 없잖아요. 개인적인 일로도 굉장히 바쁜데. 하지만 저만 그럴까 싶어요. 내가 약속했고, 해야 한다고 하기에 받아들였죠. 동아리 활동의 가장 큰 장점은 사람들이 모인다는 거예요.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정이 쌓이겠죠. 그렇게 시간이 흘러 우리는 단단해질 거예요. 그래도 어떤 계기 없이 많은 의무를 주면 부담스러울 것 같아요. 가볍게, 즐기듯이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모임을 위해 자신이 가진 것을 내어주는 리더들에게도 보상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그래야 지속 가능성이 담보된다고 생각하거든요. 저는 그 보상이 서로를 아껴주는 운명공동체가 됨으로써 이뤄질 수 있다고 믿어요. 세상에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은 너무 쉽잖아요. 사람들은 돈은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감정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때로는 돈으로도 해결 못하는 게 감정이거든요. 그래서 함께하는 마음이 중요한 것 같아요. 최근에도 모임 중간에 빠져야 하는 상황이 생겼는데 누군가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네가 없으면 다른 사람들이 하니까 너무 걱정 마, 좋은 사람들이 많아’라고요.

Q. 누군가에게 가치를 인정받고, 위로의 말을 듣는 것만큼 마음이 놓이는 순간도 없는 것 같아요. 앞으로 공동체 안에서 해보고 싶은 활동이 있으세요?

먼저 별내에서의 생활을 늘리고 싶어요. 일주일 중 3일 정도는 단지에 머무르며 사람들과 소통하려고요. 그러면서 그 비중을 점차 늘려가는 게 목표예요. 지속 가능성과 수공예에 대한 콘텐츠가 많아 아이들과 만날 수 있는 접점도 생길 것 같네요. 나중에는 생태 공감센터를 만들고 싶어요.

Q. 다들 집을 벗어나려고 하는 시대에 집, 동네에서의 시간을 늘린다는 게 새로워요. 마지막으로 위스테이에 바라는 점이 있나요?

인간적인 느낌이 더 많이 났으면 좋겠어요. 조금 마찰이 생기더라도 계속 접점을 유지하며 대화를 해야겠죠. 강요하듯 급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배려하고 기다려주면 그들도 느끼지 않을까요. 그렇게 사람들을 포용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마을 체조를 만들어 휴일에 함께 할 수도 있겠고요. 그리고 기계음으로 된 방송보다, 정말 동네 이장님 같은 육성을 듣고 싶어요. 그게 주는 힘이 있거든요. 하는 사람은 귀찮겠지만.(웃음)

나아가 조금 더 인간적인 방식을 고민하며 걸음을 내디뎠으면 좋겠어요. 조금 불편하더라도 거기에 시간과 정성이 더해져 즐거움과 행복이 된다면, 그게 좋은 장소이자 공간 아닐까요. 그렇게 됐을 때 비로소 우리는 공동체라는 이름으로 기억될 거예요.

[에디토리얼] 위스테이 이웃들의 이야기, [옆집 사람] 연재를 시작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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