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ight

재난의 시대에 발견하는 커뮤니티의 가능성

양동수 (사회혁신기업 더함 대표 / 변호사)

재난은 습관적이고 제도화된 행동 양식을 중단시키고 사람들을 사회적·개인적 변화에 따르게 하는 일종의 사회적 충격을 낳는다.” (찰스 프리츠 Charles E. Fritz)

코로나19, 공공성 회복의 긴급성을 말하다

코로나19의 감염이 전 세계적으로 확대되고 그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면서 많은 기업들에 비상이 걸렸다. 급격히 떨어진 성장률과 앞으로 예상되는 경제난이 1930년대 대공황 혹은 그 이상을 방불케 할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분석은 많은 걱정과 위축감을 야기한다.

뿐만 아니라, 감염병 확산은 우리 사회 시스템 곳곳의 취약점을 드러내고 있다. 공공의료체계의 취약점, 국외 의존적인 생산구조 등 다양한 문제가 드러나고 있고, 그간 소상공업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해 왔던 높은 임대료 부담의 문제, 대량 실업 상황에서의 사회적 안전망 문제도 더욱 심각하게 다가오고 있다. 대규모 폐업과 실업의 시대가 우리 앞에 가까이 다가온 지금, 기업은 어떻게 기업과 사회의 ‘지속가능한’ 조건들을 탐색해야 할 것인가.

그간 여러 지면과 강연 자리를 통해 ‘사회적 가치’의 중요성과 시급성에 대해 피력해 왔지만, 전 세계적인 감염병 확산과 그에 따른 사회 시스템의 질적 변화 앞에서 어쩌면 가장 긴급하게 숙고하고 논의해야 할 시점이 앞당겨 온 것 같다. 그 이유는 사회적 가치가 “과거 경제 성장과 효율성 일변도의 행동 규범, 그리고 개인과 개별조직의 이익만을 위한 의사결정 기준을 성찰하며 등장한 개념으로, 경제·사회·환경 영역의 다양한 가치, 그리고 개인·사회 공동체·미래 세대를 함께 고려하는 행동규범이자 의사결정 기준”*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양동수‧김진경‧조현경‧고동현‧온누리‧이원재, 『공공기관의 사회적 가치 실현: 포용국가 시대의 조직 운영 원리』, LAB2050, 2019, 8쪽)

우리는 더 이상의 고도성장을 기대하기 힘들 뿐 아니라, 마이너스 성장의 가속화를 막기 어려운 시기로 접어들었다. 그리고 지금과 같은 질적인 사회 변화의 요구가 전 세계적으로 펼쳐지고 있는 시점에 새로운 시대전환을 위해서는 우리 사회의 가치 평가의 기준을 바꾸고 새로운 방식으로 성장동력을 마련해야만 한다.

‘지속가능성’, 기업 생존을 위한 필수불가결한 조건

IMF, 금융위기, 코로나19 감염 확산 등 국가적인 재난 상황에서 경험했던 것처럼,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각 요소들은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더 유기적이어서, 어느 한 부분이 무너지는 순간 연쇄작용이 일어나게 된다. ‘지속가능성’의 가치는 평시에는 잘 보이지 않는 법이다. 기업의 경영자들은 임대료 경쟁이 불러온 젠트리피케이션의 결과나 수익 경쟁이 불러온 참혹한 결과들에 주목해야 한다. 그렇기에 지속가능한 조건이 파괴되기 전에, 그 가치를 빠르게 캐치하고 함께 힘써야 할 것이다.

재난의 시대에 ‘지속가능성’은 더 이상 부차적이거나, 기업의 이미지 제고를 위한 마케팅의 요소가 아니라, 기업의 생존을 위한 필수 불가결한 조건이다. 좀 더 적극적인 입장에서 말하자면, 기업의 출발점, 비즈니스 모델 자체가 ‘우리 사회의 변화를 추동하고 지속가능성을 도모하는 것’으로 나아가야 한다고도 말할 수 있겠다. 이런 점에서,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인프라로서 주거와 부동산 영역의 기업들은 자신의 존립 기반을 새롭게 돌아보아야 한다.

사회적 가치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기존의 ‘주거’와 ‘부동산’ 비즈니스 모델은 다른 산업군에 비해 특히 이윤추구 극대화의 경향을 보여 왔다. 물론 이전보다 공공주택이 수적으로 많이 공급되고 있는 것도 맞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는 또 다른 차별의 기제가 되고 있다는 점에서 여전히 한계에 봉착해 있다. 공공이 만든 주택의 공급량 증대를 넘어, 현재의 주택시장을 사회적 가치의 관점에서 재평가하고, 산업 전반의 공공성을 높여야 하는 이유다. 주거와 부동산 영역에서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고 공공성을 높이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부동산 개발 및 운영의 새로운 방법론,
PSPP(Public-Social-Private Partnership)

한국 사회에서 기존에 주거를 공급하는 주체는 크게 ‘공공’과 ‘민간의 건설사’로 나뉘었다. 어느 한편은 공급 그 자체에 방점을 두고, 어느 한편은 수익의 극대화에 방점을 두는 구조에서 주거의 ‘양극화’는 필연적일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세입자에 대한 보호가 미비한 상황에서 주거 기반의 커뮤니티는 점차 해체되었고, 커뮤니티의 감소는 지역의 활력 또한 감소시켰다.

주거/부동산 개발의 주체가 ‘공공’과 ‘민간’ 양극단으로만 편제되었던 것은 아니다. 최근에는 주택, 사회기반 시설 등 부동산 자산의 개발 시, 공공의 재원 부족이나 사업모델의 제약 등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민간의 창의력과 자본을 활용하는 PPP(Public-Private Partnership) 방식으로 진행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PPP 방식의 개발은 다양한 부동산 자산을 만들어 냈다는 점에서는 성과가 있지만, 이익 극대화 경향을 크게 줄여내지는 못해 애초 계획했던 수준으로 공공성을 확대시키지는 못했다는 비판도 받는다. 이 같은 한계는 특히 과거 뉴스테이 정책이 ‘시공사와 금융자본이 개발이익을 독점하며, 민간 수익을 보존해 주기 위해 무수히 많은 세금이 사용되었다’고 비판받았던 데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이와는 반대로 보조금 의존적인 사업 기획으로 인해, 공간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하지 못하는 경우도 왕왕 존재한다.

이에 대한 보완으로, 최근 부상하고 있는 ‘사회적 부동산’, ‘시민자산화’라 일컬어지는 대안적인 부동산 개발/운영 담론에 주목할 것을 제안한다. 사회적 부동산은 공공, 사회적경제, 민간 섹터가 각자의 역량을 발휘하면서도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는 PSPP(Public-Social- Private Partnership) 방식으로 협력하는 모델이다.

사회적 부동산을 PSPP 방식으로 개발하는 것의 목표는 아래와 같다. ①시민들의 삶과 생활을 재구성하고, ②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이 아니라 적정한 이익을 통해 각 주체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며, ③개발이익이 자본이 아닌 시민과 지역에 귀속되도록 하는 것이다. 여기서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사회적경제 주체의 등장이 또 다른 이해관계자의 등장은 아니라는 점이다. PSPP 방식의 개발이 앞선 목표들을 달성할 수 있는 이유는 공공과 민간 사이에서 사회적경제의 주체가 가교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사회적경제 주체는 ‘공공이 실현하고자 하는 공익’과 ‘민간이 추구하는 적정수익’의 간극을 조율하고, 또한 공공과 민간이 각각의 전문성을 살릴 수 있도록 협력적 거버넌스를 발휘한다.

전통적 부동산 개발 및 운영 방식과 사회적 부동산 개발 및 운영 방식 간의 대별점 ⓒ더함

PSPP의 사례 ① 협동조합형 공공지원민간임대주택

2016년 10월, 국토부와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한국토지주택공사는 고양 지축, 남양주 별내 등 2개 지구 1천여 가구에 대해 협동조합형 공공지원민간임대주택(구 ‘뉴스테이’) 민간사업자를 공모한다고 발표했다. 협동조합 등 사회적경제 주체를 통해 공익성을 추구하고 영리를 최소화하는 민간임대주택을 공급하겠다는 것이 그 목적이었다.

협동조합형 공공지원민간임대주택이 일반 공공지원민간임대주택보다 공공성을 향상할 수 있었던 것은 PSPP 방식의 사업구조 때문이다. 일반 공공지원민간임대주택은 영리 건설사와 금융자본이 사업을 시행하는 SPC(부동산투자회사법상의 REITs)에 보통주 지분을 소유함으로써 자신들의 공사도급비와 사업비 대출 금리와 같은 이윤 책정에 관여할 수 있다. 나아가 SPC 청산 시 자본이익을 추가로 획득함으로써 이윤 극대화가 가능하다.

이에 반해 협동조합형 공공지원민간임대주택은 사회적경제 주체가 직접 시행함으로써 총 사업비를 절감하고, 사업비 절감의 효과를 저렴한 임대료로 입주자들에게 돌려준다. 나아가 입주 시점에 입주자로 구성된 사회적협동조합이 SPC의 보통주 지분을 모두 획득하도록 함으로써 청산 시 개발이익을 입주자들로 구성된 사회적협동조합에게 귀속하도록 한다. 사회적협동조합은 「협동조합기본법」상 이익잉여금을 조합원들에게 배당할 수 없으며, 정관상 목적사업에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입주자들의 장기적인 거주와 지역 공동체 조성에 개발이익이 사용될 수 있다.

PSPP의 사례 ② 타운매니지먼트 방식의 도시재생

민간 주도로 진행되는 도시재생의 움직임은 자칫 임대료 경쟁을 심화시켜 젠트리피케이션을 불러오는가 하면, 공공 주도의 도시재생은 대중시민들의 소구를 잘 읽어내지 못하거나, 역량 있는 운영주체를 찾지 못하는 등의 문제로 활력을 잃는 경우가 종종 있어 왔다. 이러한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도시재생 영역에서 역시 PSPP 방식의 협력이 모색되어 왔다.

타운매니지먼트(Town Management)는 지역상인 및 지주들이 협력하여 재원을 마련하고, 지역을 직접 관리/운영하여 지역활성화를 도모하는 방식을 일컫는데, 보통 이런 과정을 거쳐 실행된다. ①우선 낙후된 상업업무지역의 상인, 기업, 건물주 등이 공공·민간 거버넌스를 이루어 협의체를 만들고, 실행추진조직으로 NPO를 둔다. ②협의체 회원들의 회비, 공공지원금, 특별 세금, 자체 사업의 수익금 등으로 재원을 마련하고, ③지역 관리계획의 수립, 외부공간의 통합 개선 및 관리, 다양한 사회실험(택티컬 어바니즘, Tactical Urbanism), 지역 공동 마케팅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한다.

앞으로는 이러한 도시재생 분야에서 새로운 비즈니스적 기회가 많이 포착될 것이라 전망된다. 실제 정부는 생활SOC와 같은 사회 인프라 구축에 공공의 예산을 지속적으로 투입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단언컨대, 여기서의 ‘지속가능성’은 공공 그리고 기업이 사회적경제 주체들과 얼마나 유기적으로 협력할 수 있을지 여부에 달려 있을 것이다.

비단 일상생활권뿐 아니라, 소비자본과 금융자본이 집적되어 있는 도심 내에서도 사회적경제 주체들은 도시의 역동을 회복하는 데 새로운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 기대된다. 이러한 사례는 현재 서울 명동 공간에서 ‘타운매니지먼트’와 ‘소셜타운 조성’의 방식으로 시도되고 있다. 자본이 가장 집약적인 명동에서 이러한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프로젝트가 진행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PSPP 방식의 사업 구조라고 할 수 있다. 사회적경제 주체가 공공과 민간의 가교 역할을 하면서 협의체를 만들어 내고, 이들이 보유한 자원이 서로 공유될 수 있도록 프로젝트를 주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본 프로젝트의 사회적 가치에 공감하는 임팩트펀드와 기존 금융권의 자금조달을 연계함으로써 공공의 일방적 지원 방식이 아닌 새로운 유형의 사회적 부동산 조성을 시도하고 있는 중이다.

명동 타운매니지먼트 시범사업 개요. 명동1가 1-1 일원은 독특하게도 금융 영역의 주체들 외에 시민사회 주체들, 사회적경제 주체들이 어우러져 입지해 있는 지역이다. 명동 TM은 명동 지역의 활력을 되찾기 위해 각 주체들의 니즈/이해관계를 확인하고, 협력하여 지역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들을 모색 중에 있다. ⓒ더함

커뮤니티의 가치, 연대와 호혜의 가치에서 발견하는
새로운 비즈니스의 가능성

전 세계적 경기침체는 그 자체로 거대한 재난이다. 물론 경제위기는 가혹하지만, 분권화와 민주화, 시민의 참여, 새로운 조직들과 대응 방식을 위한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생존을 위한 수단으로 이런 것들이 필요해질 수도 있다. 평소에 재난 준비를 더 심도 있게 한다면, 우리 사회는 짧은 순간 스쳐 지나가는 재난 유토피아의 사회, 다시 말해 더 유연하면서 즉흥적이고, 평등주의적이고 위계적이지 않으며, 모든 구성원이 의미 있는 역할을 하고 기여할 여지가 많아지고 소속감이 커지는 사회에 더 가까워질 것이다. (리베카 솔닛, <이 폐허를 응시하라>, 펜타그램, 2012, 457~458쪽)

<이 폐허를 응시하라>의 저자 리베카 솔닛은 거대 재난의 상황 속에서 사람들이 보인 행동의 의미들, 예컨대 이타성과 연대의 사례들을 추적해 나간다. 그의 통찰과 같이, 재난 한가운데에서 우리는 ‘분권화와 민주화, 시민의 참여’와 같은 방식이 새로운 가능성을 품고 다가오는 징후들을 목도하는 중이다.

기존의 관점으로는 저성장을 돌파할 방안이 잘 보이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일상의 무수한 행위들이 일어나는 사회적 부동산과, 그 안의 커뮤니티에 그 해답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이전의 ‘뉴딜’과 같이 사회 인프라를 짓고, 건설에 필요한 일자리를 창출하자는 의미가 아니다. 공간의 조성을 둘러싼 이익을 공유하는 방식을 넘어, 커뮤니티로부터 비롯되는 무수한 이익과 파급 효과들에서 가능성을 발견하자는 의미이며, 연대와 호혜의 가치에서 새로운 비즈니스의 가능성을 발견해 보자는 제안이다. ‘짓는 건축’에서 ‘잇는 건축’으로 무게중심을 옮기자는 젊은 도시전문가들의 제안을 진지하고도 긴급하게 고민해 볼 때다.*(윤주선, 「짓는 건축에서 잇는 건축으로」, 『BOOT UP, 건축도시 START UP: 건축도시스타트업의 탄생』, 건축도시공간연구소, 2017.)

그런 의미에서, 공간 기반의 관계망들에 주목해야 한다. 주거, 오피스 등 공간 중심의 관계망은 온라인 중심의 느슨한 관계망들에 비해 결속력이 높고, 이해관계 및 생활의 수요들을 공유하게 된다. 이 같은 공동의 이해관계와 수요는 필연적으로 다양한 (커뮤니티) 비즈니스의 창출을 촉발할 것이다. 근린지역을 기반으로 한 소셜네트워크 서비스 ‘넥스트도어’는 미국 내 92,164개 근린지역 공동체가 참여할 정도로 활성화되고 있는데, ‘커뮤니티는 비즈니스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현실에서 증명해 낸다. 이 같은 대규모는 아니더라도, 기존 주거와 오피스 기반의 커뮤니티를 엮어내고, 이 커뮤니티의 수요에 대응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유용한 비즈니스 기회가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다.

협동조합 방식으로 조성되는 공공지원민간임대주택인 ‘위스테이’(별내, 지축지구를 합해 약 1천 세대)의 입주민 공동체는 향후 공적으로는 사회적 안전망 역할을 하는 동시에, 비즈니스적으로도 안정된 수요를 창출하는 견고한 플랫폼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아파트 거주 가구 비율이 50.1%에 달하는 한국 사회는 ‘짓는 건축’에서 ‘잇는 건축’으로*(윤주선, 앞의 글)의 전환 가능성이 곳곳에 잠재된 장이라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개개인의 지속가능성과 구매력이 위협받는 저성장의 시대에, 기업들이 기회를 찾아야 할 곳은 이제 구성원을 보호하고 이들의 필요를 공동으로 충족해 줄 ‘커뮤니티’여야 한다. 주거와 부동산을 공급하는 기업시민들은 분양수익과 임대수익 경쟁이라는 링 위에서 내려와, 이제는 명실상부 ‘뉴노멀’로 자리 잡은 사회적 가치의 프리즘을 통해, 지속가능한 기업 경영의 조건들을 탐색하고 실험해 보아야 할 때이다. 모두가 ‘커뮤니티 기업’임을 자임하는 시대에, 부동산 디벨로퍼 기업 역시 ‘커뮤니티 기업’이 되지 못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 위 글은 포스코 기업시민연구소에서 발행하는 <기업시민리서치> vol.5에 기고한 글을 일부 편집한 내용입니다. ☞ 기업시민연구소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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