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and Culture

커리어가 중시되는 시대에, 저는 좀 특이한 직원일 수도 있어요

# 공간콘텐츠실 김유원 매니저

[더함 피플 탐구] “타인과 함께, 타인을 통해서 협력할 때에야 비로소 위대한 것이 탄생한다”(by 생텍쥐페리). 일을 하면서 좋은 동료를 만나는 것만큼 큰 복이 또 있을까요? 서로 공감하고 협력하며 더함에 다양한 색채와 가치를 더해 가는 사람들을 만나 봅니다.

경계에 놓인 애매한 일들이 있습니다. 직장인들의 애환을 다룬 콘텐츠들에서 ‘절대 꺼리고 피해야 하는 업무’로 불리는 일들 말이죠. 그런 애매함 안에는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불확실한’ 일들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스타트업에서는 그런 애매한 영역과 경계를 버티고 견뎌주는 누군가 필요한데요. 자칭, 타칭 ‘반반 업무’를 맡아 왔던 공간콘텐츠실의 김유원 매니저는 그런 경계에 버티고 선 사람인 듯했습니다.

인터뷰 중 그는 “개인의 커리어가 중시되는 시대에, 저는 좀 특이한 직원일 수도 있어요”라는 고민스러운 듯한 말을 들려주기도 했는데요. (나만 빼고) 모두가 촘촘하게 포트폴리오를 잘 쌓아 가는 것 같은 요즘, 더함이라는 기업이 추구하는 방향에 바퀴 하나라도 더 미는 ‘조력자’가 되고 싶다는 말은 의미심장했습니다. 회사를 하나의 운명공동체로 생각한다는 뜻으로도 다가왔습니다.

판화를 전공하며 ‘커뮤니티아트’에 참여하고, 좀 더 근본적인 사회 변화를 꿈꾸며 비영리단체에서 일했던 이전의 경험들을 들을 수 있었는데요. ‘나는 이런 사람’이라고 고정된 역할로 본인을 인식하기보다는, 도달하고 싶어 하는 궁극적인 방향에 대해 인식하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는 요즘도 “스스로 진흙화하려고 열심히 노력”한다고 했습니다.

김유원 매니저처럼 어디선가 일과 삶의 애매함을 견디며 분투하고 있는 이가 있다면, 그건 어쩌면 ‘계속해서’ 방향을 의식하며 전환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요. 커리어(carrier)는 애초에 무언가 많이 눌러 담는 용도가 아니라, 새로운 여행지로 나를 계속 이동시켜 주는 용도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경계에 버티고 서서, 한계를 미리 경험하고 체득하는 이

Q.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더함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나요?

안녕하세요, 공간콘텐츠실 김유원 매니저입니다. 페이지 명동 6층 ‘공간웰컴’(좋은 커뮤니티를 위한 오프라인 플랫폼)의 커뮤니티 기획 및 운영, 7~8층 ‘공중정원’의 운영을 맡고 있습니다. 그 전에는 커뮤니티하우스 마실의 ‘마실살롱’, 페이지 명동의 공간웰컴, 공중정원 #701의 내부 인테리어와 관련한 소통을 맡아 진행했는데요, 자칭 타칭 ‘공기 반 공콘 반’(공간기획실 반, 공간콘텐츠실 반)이라 불렸습니다. (웃음)

저는 아직 어떤 경계에 있는 일을 하는 것 같아요. 인테리어의 콘셉트를 전달하고 소통하는 역할을 할 때도 있었고, 공간 운영과 대관 업무를 할 때도 있었고요.

Q. 판화를 전공하고 비영리기관과 사회적기업에서 일을 시작했다고 알고 있어요. 판화 전공과 비영리기관, 사회적기업은 언뜻 잘 연결되지 않는 조합인데요,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당시 판화과 지도 교수님(정원철 교수)께서 공공예술 프로젝트, 커뮤니티아트 프로젝트를 적극적으로 수업에 도입했는데(링크), 저 역시 그 영향을 많이 받았던 것 같아요.

Q. ‘커뮤니티아트’라는 개념이 생소하게 느껴져요.

공공예술의 종류가 다양한데요. 그중에 저희가 접근했던 공공예술은 ‘커뮤니티아트’, 즉 공동체, 지역사회의 삶을 예술로 이어주는 역할이었어요. 제가 다니던 대학교가 북아현동에 위치해 있었는데, 당시 그 지역이 재개발지역으로 선정되면서 소위 달동네에 살던 주민들이 쫓겨나는 문제가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었어요. 그걸 계기로 저희 학교 전체가 <북아현 프로젝트: 골목에서 주름잡기>(링크)에 참여했는데요. 20여 개의 팀이 꾸려져서 약 1년 동안 주민과 소통하고 지역 속에 담긴 이야기를 채집하는 작업을 했습니다.

어떤 팀은 주민들을 인터뷰하고 이야기를 녹취해서 그 스토리로 동화책을 만드는 일을 했고요. 어떤 팀은 주민분들의 의견을 듣고 이분들이 음식을 나누어 먹기도 하고 담소도 나눌 수 있는 평상을 만들어 드렸어요.

Q. 이 프로젝트가 매니저님께는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이 프로젝트의 취지는 우리가 이 지역의 재개발을 막을 순 없지만 2~3년 후에 사라질 동네/마을에 관심을 갖고 그것을 기억하자는 것이었어요.  분명 좋은 취지의 프로젝트였지만 당시 저는 그 프로젝트에 그렇게까지 흥미를 느끼진 못했어요. 예술이 사회에 직접적인 변화를 줄 수 없다는 한계가 아쉬웠고, 좀 더 근본적인 해결방법은 없을까에 관심을 가졌던 것 같아요.

그런데 4학년이 되어 졸업작품을 고민할 때쯤 다시 이 ‘커뮤니티아트’에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아는 선배가 그런 얘길 하더라고요. “진짜 아티스트는 4학년이야. 졸업하면 돈의 노예가 되어서 하고 싶은 예술을 할 수 없어. 학교 다닐 때가 진짜 아티스트이지, 졸업하고 나면 돈이 엄청 많지 않은 이상, 결국 관객이 원하고 좋아하는, 주목받을 수 있는 그림을 하게 될 거다. 그러니까 지금이 어쩌면 하고 싶은 걸 할 마지막 기회이다”라고요.

듣고 보니 일리가 있더라고요. 저는 평생 작가로 먹고살 계획도 아니었고, 최대한 재미있고 의미 있는 프로젝트를 하고 싶었어요.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건 뭘까를 고민하다 ‘일상에서의 아트’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졸업작품으로, 1년간 ‘소생프로젝트’라는 이름의 커뮤니티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당시는 ‘업사이클링’이라는 개념이 생소할 때였는데요. 버려진 현수막을 활용해 노트커버로 만들고, 아현동 주민들께 나누어 드리며 그분들이 가진 업사이클링 아이디어와 교환을 했어요. 처음에는 단순한 물건의 소생에서 시작했지만, 잊고 있던 삶의 가치, 사람에 중점을 두는 방향으로 프로젝트가 커졌고, 마지막에는 청소를 업으로 삼는 미화원의 이야기에 관심을 가진 책을 만들게 되었죠.

버려진 현수막을 활용하여 만든 노트 (사진 제공: 김유원)

Q. 판화 전공이었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이런 이야기는 처음 듣는 것 같아요. 프로젝트를 하면서 인상 깊었던 일이 있을까요?

프로젝트 막판에 저희 판화과에서 청소를 하시는 분이 눈에 들어왔어요. 저희 학교에서 16년 넘게 청소를 하셨던 분인데, 학생들은 그분을 그냥 ‘할머니’라고 불렀어요. 판화과 특성상 유해한 화학약품이 많아서 학생들이 쓰는 튼튼한 전문가용 앞치마를 선물한 적이 있었는데, 정작 할머니는 두꺼운 앞치마가 너무 두껍고 길어서 불편하다고 잘 안 쓰시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현수막을 이용해 할머니 몸에 맞는 앞치마를 만들어 드렸는데요. 이걸 계기로 이야기를 나누다 할머니가 청소에 대해 갖고 계신 확고한 철학을 듣게 됐어요. 정말 멋있었어요. 할머니가 하시는 청소를 장인정신에 빗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날부터 할머니를 따라다니며 같이 청소를 하고, 청소하시는 모습을 녹화하고 촬영해서 책으로 만들었어요. 할머니의 청소 노하우와 철학을 담은 일종의 매뉴얼북이었는데, 제목은 <허를 찌르는 청소 매뉴얼북>이었어요. 할머니가 ‘슥삭슥삭 깨끗이 닦아야 하는겨’라고 하면 그대로 받아 적고, 알려주신 그대로 따라하는 제 모습을 함께 담아냈죠.

학교에서 십수 년 청소노동을 하신 노동자(학생들은 ‘할머니’라고 불렀다)의 청소 과정과 철학을 녹여 낸 전시와 매뉴얼북 (사진 제공: 김유원)

Q. 청소노동, 돌봄노동의 가치를 주목하고 재평가해야 한다는 사회적 목소리가 계속 높아지고 있는데요. 그런 점에서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의미의 프로젝트라는 생각이 들어요. 당시에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지셨을 것 같아요.

당시 페이스북에 작업 과정을 아카이빙했는데, 이 작업물을 유심히 보시던 리포터분의 취재로 <대학내일>에 소개가 되었어요. 그리고 이걸 계기로 제가 가고 싶었던 비영리단체에 입사를 했어요. 대기업의 CSR사회공헌 사업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했는데요, 좀 더 근본적인 사회 변화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면서 회사를 그만두고 3개월을 뉴욕에서 방랑했어요. 그곳에서 우연히 음악봉사를 가게 되었는데, 그곳 대표님이 서울에도 지부가 있는데 지금 아무도 없다고 하시는 얘길 듣게 되었어요. 그때 선뜻 ‘제가 할게요’라고 말을 했고, 한국에 와서 바로 그 사업을 시작했어요.

Q. 주로 어떤 일을 하셨나요?

대학병원의 암환자 병동, 호스피스 병동, 간이식 병동에 있는 환자분들께서 음악 연주를 들으실 수 있도록 아티스트들과 병원을 연결하는 역할을 했어요. 그때 힘들기도 많이 힘들었는데 뿌듯함을 정말 많이 느꼈어요.

사실 개인적으로 연주 봉사를 하는 분들도 계셨지만, 이분들이 더 흥이 나서 하려면 누군가는 나서서 실무 프로세스를 해주는 사람이 있어야 하거든요. 제가 그 역할을 했던 거죠. 하기 힘들다고 중단해 버리면, 아픈 환자분들을 찾는 연주자들이 없어질 수도 있다는 생각에 많은 책임감을 느꼈어요.

대학병원 암환자 병동, 호스피스 병동, 간이식 병동에 있는 환자들이 음악 연주를 들을 수 있도록 아티스트와 병원을 연결하는 비영리단체에서 일을 했었다. (사진 제공: 김유원)

# 아파트 만드는 사회적기업이 있다는 말에 솔깃

Q. 더함에는 어떤 계기로 들어오셨나요?

처음 비영리단체를 그만두었을 때와 비슷한 이유였는데 경제적으로 안정적인 구조가 되어야 하고 싶은 일을 지속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어느 정도 규모 있고 안정적인 사회적기업에 다니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무엇보다 사회 문제 본질에 접근해서, 문제를 직접적으로 해결하는 곳에 가고 싶었어요. 그러던 중 아파트를 만드는 사회적기업이 있다는 거예요. 일단 망하진 않겠지 싶었습니다. (웃음) 그렇게 더함에 관심을 갖던 중 채용 공고가 떠서 지원하게 되었죠.

Q. 1년 가까이 전략기획실에서 업무를 맡아 오시다가, 사업팀으로 업무를 전환하셨는데요. 어떤 점이 다른가요?

기존에 하던 업무도 잘 맞았다고 생각하지만, 사업팀으로의 전환 후 아무래도 팀으로 일하는 데서 오는 안정감을 느끼게 된 것 같아요. 제가 생각하기에 저는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은 사람이거든요. 저에게 부족한 부분을 누군가 메워 주고, 저 역시도 제가 잘할 수 있는 부분으로 누군가를 보완해 줄 수 있는 점이 만족스러워요.

Q. ‘공간’이라는 영역에 처음 접근하는 건데 어렵지는 않으셨나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해야 할지 몰라서, 순간순간 버거움을 많이 느끼긴 했어요. 여기저기 바짓가랑이 붙잡고 ‘나 좀 알려 주세요’라며 다녔어요. 엄청 힘들기는 했지만, 지금의 저에게 있어 가장 큰 자산은 ‘마실살롱’이라는 공간의 조성 전 과정을 경험해 봤다는 자체인 것 같아요. 그 경험이 있었기에 제가 팀 내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이 생겨난 것 같고요. 무엇보다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났고, 그분들 덕으로 공간이 잘 구현될 수 있었어요.

‘판화’라는 평면부터 해서, 3D 입체로 넘어오는 과정까지 그래도 완전히 결이 다른 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어요. 다행히 중간중간 재미도 느꼈고요. 제가 잘하는 미술적인 감각과 역량을 활용해서 회사 일에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이 저에겐 긍정적으로 다가와요.

# 단단한 걸 부수고 다시 쌓아가길 반복하는 시간들

Q. 공간웰컴 내부 인테리어에서 가장 공들인 부분은 어디일까요?

다 하나하나 손이 안 간 데가 없기는 하죠. 그렇지만 처음 들어가는 컨시어지 공간을 제일 열심히 준비한 것 같아요.

리모델링하기 전부터 명동성당이 바라보이는 전망은 최고였어요.  리모델링하면 그 점을 더 부각시키고 싶었고 인테리어 디자이너분께도 그런 어필을 많이 했었죠. 여기 오면 ‘우와’라고 감탄하게 만들어 주셔야 한다고요. 다행히 디자이너님 포함 관계된 많은 분들께서 심혈을 기울여 주셔서 지금처럼 예쁘게 잘 나올 수 있었어요.

Q. 페이지 명동에 들어갔을 때 사람들이 어떤 인상을 받길 원하시나요?

맨 처음 브랜딩 워크숍 때 논의했던 콘셉트는 ‘아일랜드’이자 ‘사막 속의 오아시스’ 같은 공간이었어요. 명동의 빌딩 숲속, 외롭고 쓸쓸한 섬이지만, 가끔은 고요한 가운데 나 자신을 바라보게 되고, 또 진솔한 대화도 가능한 그런 공간이기를 바랐어요. 그리고 명동성당에서부터 이어져 오는 고즈넉한 감성을 느낄 수 있길 바랐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떤 분이 보기엔 약간 올드한 느낌도 들 거예요. 요즘의 힙한 감성은 아니죠. 그런데 그런 힙한 곳에서 이질감이나 소외감을 받는 분들도 계시잖아요. 연령, 세대의 문제도 있겠죠. 이곳을 찾으시는 분들이 ‘내가 이런 힙한 데 와서 있어도 되나?’ 이런 느낌을 받지 않으셨으면 했어요.

페이지 명동 6층 ‘공간웰컴’에 들어서면 바로 보이는 컨시어지 공간. 이 공간의 가장 큰 매력은 창 밖으로 보이는 명동성당과 남산타워의 뷰이다. (사진 제공: 김유원)

Q. 더함에 와서 공간운영자, 공간기획자라고 불리는 업을 처음 경험하고 계신데, 어떠신지 궁금했어요.

스타트업의 장점이라고도 생각이 드는데, 큰 기성의 기업이었다면 나에게 맡기지 않았을 만한 일들을 턱턱 주잖아요. 그런 게 때로는 힘든 챌린지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의욕을 자극하는 요소였던 것 같아요. 처음에는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싫지도 않았어요. 내가 만약 사업을 한다면 해보고 싶었던 것들을 해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기는 거니까, 그런 건 좋더라고요. 약간 사심을 넣어서 하는 작업들도 많이 했던 것 같고, 덕분에 많이 배웠죠. 더구나 ‘커뮤니티’라는 새로운 업을 맡게 되어 많이 떨리고 설레는 시간입니다. 더함이 ‘공간과 사람을 잇는 커뮤니티 플랫폼’이라고 소개하잖아요. 공간과 사람을 엮고, 사람과 사람을 엮는 일이 기대돼요.

Q. 일을 하며 드는 요즘의 고민은 뭔가요?

다양한 일을 통해 여러 경험을 할 수 있다는 점 한편으로, 넥스트에 대한 고민은 있어요. 어디서 내 전문성을 찾을 수 있을까.

Q. 넥스트를 고려했을 때, 더함 안에서 어떤 성격의 일을 지속하고 싶으신가요?

그것 역시 고민이 드는 지점이에요. 누군가는 이상하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저는 더함이라는 기업이 추구하는 방향에 바퀴 하나라도 더 미는 ‘조력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에 입사를 했던 것 같아요. 개인의 ‘커리어’가 중시되는 시대에, 어떻게 보면 되게 특이한 직원일 수도 있어요.

Q. 저도 늘 고민이에요. 요즘 시대에는 한 가지 직업으로 평생 먹고 산다는 보장이 없기도 하고, 어떤 일이 나에게 맞는 일일지, 잘하는 일과 좋아하는 일 중 어떤 것을 택해야 할지, 어떤 가치관을 중심에 두고 직업을 택해야 할지 등 이런 고민을 하는 사람이 많은 듯해요. 제 주변의 40대 선배들도 늘 고민 중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저도 이제는 이런 번뇌(?)를 받아들이려 하고 있어요.

공간 조성, 기획, 운영이라는 업무 경계를 넘나들고 있는데, 어딘가에 닻을 내릴 수 있을까, 닻을 내리는 것이 도움이 될까 이런 고민들을 계속하고 있네요.

Q. 타멤버십에 참여하기도 하고, 공간과 커뮤니티 관련한 인사이트를 얻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했다고 들었어요. ‘좋은 공간’ 혹은 ‘좋은 커뮤니티’에 대한 평소 매니저님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정말 고민이 많이 되는 질문이에요. 이건 정말 제 개인의 의견이고, 조심스럽게 말씀드리면, 공간의 외양에서 느껴지는 아름다움과 임팩트도 중요하지만, 결국은 거기에서 만나는 사람이 좌우하는 것 같아요. 그 공간에서 나를 처음 응대하는 사람, 그리고 공간 안에서 만나는 다양한 모임과 사람들이요.

연애할 때도 그렇잖아요. 각자 외양적으로 좋아하는 스타일이 있다는 건 부인할 수 없지만 시간이 지나면서는 결국 그 사람의 인품, 유머감각, 대화주제 같은 것들이 더 중요해지죠. 공간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Q. 결국은 사람이 중요하다는 거군요. 그러면 공간웰컴에 있는 멤버로서 어떤 인상을 주고 싶으신가요?

그게 어려운 것 같아요. ‘환대의 공간, 누구에게나 웰컴일 수 있는 공간’이라는 큰 틀에서의 방향은 있지만, ‘환대’란 무엇인지에 대해 앞으로 더 고민이 필요할 것 같아요.

많은 공간에서 같은 옷 혹은 통일된 느낌의 옷으로 브랜딩을 하는데, 사실 옷을 통해 드러내고자 하는 ‘무엇’이 없다면 공허할 것 같아요. 옷을 입는 순간 같이 입혀지는 무형의 무언가에 대해 다함께 고민 중이에요.

# 더함다움은 ‘틀을 깨는 것’

Q. 더함에서 일하면서 애사심이 자연스레 드는 순간이 있었나요?

저는 확실히 더함이 운영 중인 오프라인 공간이 있다는 점에서 애사심이 생기는 것 같아요. 사람들에게 공간을 소개하고 ‘이 공간 만드는 일에 조금이나마 참여했다’라고 말할 때… 그런 순간들이 애사심을 만들어 주는 것 같아요.

이건 저뿐만 아니라 더함 많은 분들이 그렇게 느낄 것 같아요. 중요한 손님들이 찾아오면, 가장 먼저 더함에서 조성한 공간들을 소개하잖아요. 소개할 때 어떤 뿌듯함, 자랑스러운 감정들을 느끼시는 것 같아요. 그리고 손님들이 와서 ‘정말 예쁘다’고 말씀해 주시면 기분이 좋죠. 더함 구성원들 모두가 이 결과물에 조금씩 기여한 바가 있잖아요.

Q. 매니저님이 생각하는 ‘더함다움’은 뭘까요?

더함다움은 ‘틀을 깨는 것’ 같아요.

Q. 많은 게 함축되어 있을 것 같아요.

제가 인도 여행 중 정말 인상 깊게 봤던 문구가 있어요. “Everything is Possible.” 인도에서 그 문장을 처음 봤을 때, ‘그러게, 인도에서는 무슨 일이든 벌어질 수 있지’란 느낌이었거든요. 그런데 요즘 조금은 다른 의미에서 이 문장이 생각나네요. “Everything is Possible.” 물론 여러 애환이 담겨 있습니다. (웃음)

하나의 문제에 접근하는 정해진 방식을 깨고, 다양한 방식을 상상해 보고 시도해 보는 조직 같아요. 덕분에 딱딱했던 머리가 깨지는 느낌이랄까. 약간의 잔머리도 생겼고요. 어려운 문제에 맞닥뜨렸을 때, ‘할 수 있는 방법이 어딘가에는 있겠지?’라고 생각하게 된 것 같아요.

# 사랑하는 사람들과 아름다운 세상을 최대한 누리는 것이 목표

Q. 평소 거의 매일 아침 운동을 하시며 체력관리를 하고 계시다고 들었어요. 아침에 눈 떠서 출근하기도 힘든데, 언제부터 운동하는 습관을 갖게 되신 건가요?

1년 정도 일을 쉬는 시기가 있었는데, 미국에 있는 3개월 빼고는 7개월 동안 매일 아침마다 요가를 했어요. 요가를 해보신 분들은 공감하시겠지만, 요가의 마지막 동작인 사바아사나가 끝나면 다시 태어나는 기분이 들거든요. 그래서인지 매일매일 다시 태어나는 기분이었어요. 그때부터 약간 운동에 열광하게 되었죠. 그러고 나서 다시 2년 반 정도 운동을 잊고 지내다 더함에 입사한 당일에 운동 수강권을 끊었어요.

예대에서 늘 몸을 혹사하며 작업하는 것에 익숙해져서 직장생활도 그렇게 해야 하는 줄 알았던 것 같아요. 아프고 나니 좋아하는 일을 오랫동안 하고 싶으면 나를 잘 돌볼 줄 알아야 한다는 걸 배웠고, 그후부터는 운동은 꽤나 중요한 일 중에 하나예요.

Q. 혹시 매니저님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일이나 사람이 있을까요?

어렸을 때는 여행이 저에게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일이었어요, 대학생활 내내 방학마다 여행을 다니면서 고정관념이 되게 많이 깨졌던 것 같아요. 예대 친구들도 만만치 않게 특이한 친구들이 많았는데, 해외여행 다니면서 예상을 넘어서는 다양한 백그라운드를 가진 사람들을 만났어요. 그들에게 듣는 이야기들이 제 가치관에 엄청 많은 영향을 줬어요. 단단하게 있던 머리통이 여행을 하고 사람들을 만나면서 다 부서진 거죠. 그리고 그걸 다시 조립을 해서 성숙기에 들어갔던 게 직장생활을 할 무렵이었어요. 지금은 오히려 물컹물컹하게 하려고, 스스로 진흙화하려고 열심히 노력하는 중이에요.

김유원 매니저에게 여행, 낯선 이들과의 만남은 단단한 편견을 깨뜨리고 인생을 전환시킨 계기가 되었다. (사진 제공: 김유원)

그 다음으로 영향을 많이 준 사람은 오빠예요. 어렸을 때는 엄청 많이 싸웠어요. 주먹다짐도 하고. (웃음) 그러다 한 번 집 상황이 안 좋아졌을 때 서로 붙잡고 엉엉 운 적이 있는데, 오히려 그때부터 관계가 좋아졌던 것 같아요. 오빠가 지금 해외에서 일하는데, 화상통화를 할 때면 1시간씩 통화할 정도예요. 해외에 나가니 한국에 대해서나 가족에 대해서나 더 애정이 커지나 봐요. 공기업에 다니다 보니 국내 대학생들에게 멘토 역할을 하는 활동을 하는데, 저보다 더 저의 커리어에 관심도 많고 저에게도 많은 자극을 줘요. 돈 없으면 도움 줄 테니 책을 사거나 공부하는 데 돈을 아끼지 말라는 말도 해주고요.

Q. 매니저님의 비전, 인생 목표는 무엇인가요?

사실 굉장히 소시민 스타일입니다. 되게 웃기게 들릴 것 같은데, 지금 죽어도 후회 없을 만큼 만족해요.

제가 여행을 정말 좋아하는데, 세상이 너무 아름다워서, 이 아름다운 세상을 다 보고 죽는 게 꿈이었어요. 옛날엔 새로운 여행지에 가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일이 너무 좋았는데, 이제 여행도 만족스러울 만큼 다 다녀 본 것 같고, 옛날처럼 미칠 것 같은 기분이 아니더라고요. 또 제 여행 기억 중 가장 좋았던 남프랑스를 가족들과 함께 다시 여행을 간 적이 있는데, 한 시골마을 길을 엄마와 걷다 “엄마, 나 이제 죽어도 될 것 같아”라고 했다가 등짝을 맞기도 했었네요. (웃음)

길게 길게 돌아왔지만, 이 아름다운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최대한 누리는 것? 그게 제 인생 비전이자 목표일 것 같습니다.

💌 공간콘텐츠실 김유원 매니저 인터뷰를 끝으로 <더함피플탐구> 시즌 1을 종료합니다. 그간 더함피플의 이야기에 관심 가져 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합니다. 무엇보다 본인의 이야기를 선뜻 들려주고 고민을 나눠준 동료분들께도 감사합니다. 각자 살아온 다양한 삶이 만나 지금의 더함을 이루고 있음을 새삼 느꼈습니다.
새해에 더 많은 고민과 이야기로 돌아오겠습니다. 힘들고 지치기 쉬운 때이지만, 서로를 돌보고 연대하는 새해 맞이하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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