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and Culture

소셜 디자이너로서 성장 스토리, “Think and Do”

# 전략기획실/부동산사업개발실 정지영 팀장

[더함 피플 탐구] “타인과 함께, 타인을 통해서 협력할 때에야 비로소 위대한 것이 탄생한다”(by 생텍쥐페리). 일을 하면서 좋은 동료를 만나는 것만큼 큰 복이 또 있을까요? 서로 공감하고 협력하며 더함에 다양한 색채와 가치를 더해 가는 사람들을 만나 봅니다.

여기저기서 범람하는 ‘성공 스토리’들을 읽다 보면, 건강한 자극이 되기도 하지만, 주눅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죠. 이런 성공 스토리보다는, 저마다 시행착오 속에서 줄기를 조금씩 뻗어가고 나이테를 새겨온 🌳성장 스토리🌳가 더 많아진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더함의 구성원들도 한 해 한 해 나이테(와 주름과 흰머리)를 조금씩 늘려가고 있을 텐데요. 오늘 피플탐구를 통해 만나 본 정지영 팀장은 사회를 새롭게 고민하고 디자인하는 ‘소셜 디자이너’로서 성장해 온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때로는 파편화되어 있던 정보들이 어느 순간 연결되어 보이는 ‘티핑 포인트’를 경험하기도 하고,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니 쑤욱 성장해 있는 걸 느끼기도 했다는데요. “더함은 여유를 두고 천천히 성장시켜 주는 조직”이란 생각도 들려주었습니다.

때로는 ‘각자도생’과 같은 냉혹한 이야기들이 더 크게 들려오기도 하지만, 조금만 주변을 둘러보면 감동적인 연대의 스토리도 많다는 걸 모두가 느낄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공 스토리’보다는 ‘성장 스토리’가 더 많이 쌓이고 공유되어야겠지요. 희망을 조금만 더 덧붙여 본다면, 이런 스토리들이 어느 개인의 성장기가 아닌, 공동의 성장기로 읽힐 수 있다면 더욱 좋겠습니다.

# 더함 사업들의 오퍼레이터

Q. 현재 더함에서 하고 계신 일을 소개해 주시겠어요?

한 축으로는 위스테이 별내와 위스테이 지축의 사업 오퍼레이팅을 담당하고 있고요, 또 다른 한 축으로는 더함의 신규 프로젝트들을 위한 투자 유치와 같은 자금 조달 업무를 같이 진행하고 있습니다.

Q. ‘오퍼레이팅’은 구체적으로 어떤 업무일까요?

아시다시피 위스테이는 국내 최초 협동조합형으로 진행하는 공공지원 민간임대주택사업인데요, 리츠(REITs)라는 SPC(Special Purpose Company, 특수목적법인)를 통해서 진행하는 사업이다 보니, 리츠의 전반적인 행정 관리, 법인 운영부터 시작해서 주요한 사업 진행사항에 대한 협의를 맡고 있습니다.

맡고 있는 일의 비중에서 ‘거버넌스 관리’가 가장 큰 것 같아요. 우리 사업이 다른 일반적인 공공지원 민간임대주택 사업과 다른 것 중 하나가 거버넌스 구조 안에 ‘협동조합’이 들어와 있다는 점인데요. 헙동조합과 협의해서 같이 진행해야 하는 일들이 많아요. 특히 입주 후에는 협동조합이 이 사업의 주주로서 참여하게 되는데, 그 구조들을 같이 설계해야 하는 것들도 있고요. 협동조합뿐 아니라, 넓게 보면 LH, 자산관리회사, 시공사들과의 관계도 있는데, 그런 전반적인 것들을 관리해 내는 게 저의 메인 업무라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위스테이 사업 내에서) 더함이 다른 시행사들과 다르다고 할 수 있는 게, 회사 내에 입주자를 모집하는 마케팅팀도 있고, 건축 인허가 업무 등을 담당하는 공간기획실, 커뮤니티 서비스와 주거 서비스를 기획하고 운영하는 사회적자산운용실과 커뮤니티디자인팀 등 부서가 있다는 점이죠. 사실상 사업의 모든 분야에 더함이 관여하고 있다고도 할 수 있는데요. 필연적으로 많은 이슈가 발생하는데, 이 이슈를 파악하고 조정/협의하는 업무를 맡고 있어요. 물론 각각의 실이 전문성을 기반으로 일을 진행해 주셔서, 제가 해야 할 일의 상당 부분 덜어지고 있고요, 그 점에서 감사해요.

역사적인 위스테이별내사회적협동조합의 첫 이사회 현장.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이가 정지영 팀장이다.

# 직업 히스토리: “Think and Do”

Q. 기존에는 어떤 일을 하셨는지요?

대학에서 호텔경영과 정치외교를 전공했어요. 호텔경영은 기본적으로는 ‘경영학’을 베이스로 하는데요, 경영학이 실용학문이다 보니 귀납적이면서도 보편화할 수 있는 이론과 케이스로 정립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멋져 보이는 용어들이 많지만, 공허한 느낌이랄까요. 물론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 고민하는 멋진 연구자, 교수님들도 계셨죠.

경영학을 공부하면서 한편으로 사회에 대한 진지한 고민, 궁금증이 들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택한 게 정치외교였는데, 정치학의 고전들을 읽으며 깊이 있는 고민과 토론을 이어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가 있었는데, 아시겠지만 현실은 주입식 교육이었었죠. (웃음)

경영학을 통해서는 지속 가능한 운영과 지속 가능한 성장에 대한 고민을 이어갔었고, 정치외교학에서는 개인, 사회제도나 구조에 대한 관계 규정을 하고 그걸 풀어가는 것에 대해 공부할 수 있었어요. 이런 공부를 이어가며 자연스럽게 ‘사회적 기업’이란 것에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그런데 가만 들여다보면 ‘사회적 기업’이라는 말은 굉장히 모순적인 말이잖아요. ‘기업’은 이윤을 강력한 추동 동기로 하여 굴러가는, 사익을 추구하는 조직체인데, ‘사회’라는 말이 붙은 거잖아요. 이 말을 접했을 때 굉장히 큰 호기심이 생겨났죠.

졸업을 1년 남기고 휴학을 하면서 다양한 섹터의 경험들을 두루 해보자고 생각했는데요. 그 첫 도전으로 모 정당에서 대학생이 정책을 만들고 제안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했어요. 대학생들이 정책 제안을 하고 이를 디벨롭하는 활동이었는데, 기수당 약 80명의 단원들이 활동을 하는 꽤 규모 있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한 기수는 멤버, 한 기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자리에서 활동하며 잠깐이나마 ‘정당이 운영되는 방식’을 것을 경험해 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어요. 좋은 경험이었던 것은 맞지만, 과정 속에서 정당은 저에게 잘 맞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다음은 민간기업의 인턴 활동을 했었는데, 나쁘지는 않지만 좋지도 않은 무난한 경험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경험한 것이 희망제작소라는 민간연구소에서의 인턴 활동이었어요. 민간연구소를 흔히 ‘씽크탱크’(Think Tank)라고 하는데, ‘씽크앤두탱크’(Think and Do Tank)라고 자임할 만큼 실사구시적인 대안 제시를 모토로 한 곳이었어요.

저는 ‘사회적경제센터’라는 곳에서 약 1년 정도 인턴으로서 업무를 경험했는데요. 저에게는 너무 재밌고 의미 있는 경험이었어요. 기본적으로 ‘사회적경제 분야를 이끌어갈 수 있는 사람을 키운다’는 기조의 팀이었고, 내가 하는 이 일이 어떤 맥락 안에 있는 일인지, 내가 왜 이 일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환기해 주는 선배들에게서 일을 배울 수 있어 좋았어요. 인턴직이었지만 기획을 할 권한도 주어지고 여기에 대한 상세한 피드백도 받을 수 있었고요. 사회 경험이 많지 않은 저로서는 굉장히 큰 베네핏을 받았다고도 생각합니다.

Q. 그럼 바로 NPO 쪽으로 진로를 선택하신 건가요?

아이러니하게도 취직을 구체적으로 고민하는 시점이 되니, 막상 너무 고민이 되는 거예요. 먹고 살 걱정도 되고요. 정당 활동이나 자원봉사 활동을 함께 했었던, 서로 깊은 생각도 나누고 의지도 하는 친구가 한 명 있는데, 술을 마시면서 저의 이런 고민을 털어놓게 되었어요. 그냥 다른 사람들 하는 것처럼 취업을 준비해볼까 라고 말하니, 그 친구가 “야, 너도 그럴 거냐?”라고 하더라고요. 저에게 실망했다는 얘기였던 거죠. 같은 고민하던 또래의 친구들이 대기업 취업 준비를 하는 상황 속에서 동지를 잃은 듯한 느낌을 받았던 것 같아요. 그날 밤에 방에 누워서 이런저런 생각 끝에 비영리 쪽으로 진로를 알아봐야겠다고 결심했어요.

때마침 희망제작소에서 프로젝트 제안을 주셔서 결합하게 되었는데요. 완전 땡큐였죠. 이때 진행했던 프로젝트가 ‘위키서울’이라는 이름의 ‘서울시 사회적경제 아이디어 대회’였어요(링크). 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시민들의 아이디어를 받아서, 사회적경제 방식으로 실제 실행도 해보고, 가능하다면 창업도 해보고, 창업을 하신다면 진행도 해드리는 프로그램이었어요. 일종의 프리 인큐베이팅이었어요. 사회 초년생으로서 짧은 기간 동안 많은 네트워크를 만들 수 있었고, 사회적경제의 생태계에 대해서 이해할 수도 있는 값진 경험이었습니다. 첫 일임에도 저에게 굉장히 많은 도움이 되었어요.

희망제작소에서의 마지막 프로젝트는 ‘사회적경제 핵심인재육성센터’라고 하는 사업이었는데, ①사회적 기업가 과정과 ②차세대 리더 과정, ③인큐베이터 과정, ④정책전문가 과정으로 나뉘어 진행하는 교육 프로그램이었어요. 그 당시 ‘교육’이라고 하면 흔히 집체 강의식의 교육을 생각하기 쉬운데, 당시 이 프로그램은 ‘참여형 교육’이라고 하는 굉장히 파격적인 형식으로 진행했어요. 이 프로그램의 가설은 이런 거였어요. 한 과정에 적게는 10명에서 20명 정도가 참여하는데, 이분들이 가지고 있는 경험과 지식이 공유되고 구조화되면 사회를 혁신할 수 있지 않을까. 한마디로 정리하면 “네트워크에 의한 사회혁신”이라는 거였죠. 결과적으로는 가설이 맞다고 증명되는 것을 실무자로서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

이 프로젝트를 끝낸 후 서울혁신파크로 이직을 했는데요. 방금 말씀드렸던 “네트워크에 의한 사회혁신” 경험이 혁신파크로의 이직에 굉장히 큰 영향을 미쳤어요. 단일 기업, 개인이 아닌 네트워크가 사회를 바꾸어 가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걸 알게 된 거니까요. <서울의 문제 해결을 위해 모이고(Come), 연결하고(Connect), 창조(Create)하여 새로운 미래를 만드는 사회혁신 플랫폼>이라는 혁신파크의 모토가 그래서 더 와닿았고요.

1년차 때에는 입주단체를 모집하고, 모집한 단체들이 안정적으로 자리 잡고, 서로를 이해하고 알아가는 ‘조성 작업’을 진행했었습니다. 그 이후에는 사회혁신 프로젝트의 기획 및 진행을 지원하는 일들을 했어요.

Q. 더함에는 어떤 계기로 결합하신 건가요?

‘중간’지원조직 실무자로서 겪는 어려움도 있었고, 내가 지원을 하고 있는 ‘현장’이란 곳에서는 어떤 일을 하고 있는 것일지 궁금증도 있었어요. 그런 찰나에 더함을 소개 받아 대표님과 면접을 보고, 더함에 들어오게 되었어요. 처음 맡았던 위스테이 별내, 지축의 조합원 모집원 업무도 그렇고, 지금 진행하고 있는 일 중 하나인 사회적 금융 생태계 조성과 관련된 일도 그렇고, 크게 보면 예전에 했던 업무와 고민의 연속선상에 있다고도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 “더함은 여유를 두고 천천히 성장시켜 주는 조직”

Q. 더함에서 가장 만족하는 부분은 어떤 것일까요?

이건 정말 개인적인 느낌인데요. 더함 이전에는 ‘티핑 포인트’를 통해 일적 성장을 느꼈어요. 소위 ‘1만 시간의 법칙’을 말하는 것처럼, 꾸준히 하다 보면 내가 일정 수준으로 튀어오르는 경험을 할 때가 있었어요. 예전에는 파편화된 정보들로 알고 있던 것들이, 어느 순간 연결되기 시작하는 거죠. 더함에서는 이런 드라마틱한 ‘티핑 포인트’는 없었지만, 1년, 2년 지나고 나서 돌아보면 제가 성장해 있는 걸 느껴요. 그런 점에서 더함은 제가 급하지 않게, 여유를 두고 천천히 성장시켜 주는 조직이란 생각이 들고요.

더함은 ‘직장’이라기보다는 ‘직업을 주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기회를 주고, 업에 대한 고민을 하게 해주는 곳이요. 직장과 직업은 다르잖아요. 직장은 내가 일하는 일터이고, 직업은 어떤 방향성을 가지고 하는 일이고요. 그런 의미에서 ‘직장인’과 ‘직업인’은 다르다고 생각하는데, 저는 ‘직업인’으로서 생각하려고 노력합니다.

Q. 더함의 시조새(?) 중 한 분인데, 회사가 성장해 가는 걸 보면서 어떤 느낌이 드시나요?

굉장히 신기한 기분이 들죠. 크게 세 가지 측면에서 신기함을 느끼고 있는데요. 우선 2017년에 입사할 당시만 하더라도 정말 잘 모르는 분야였고, 하나하나 다 찾아가며 일을 했었거든요. 일하는 데 막히는 게 정말 많은 느낌이었고요. 그런데 지금 한 3년 정도 하다 보니까, 내가 잘 모르고 헤맸던 것들이 저에게 체득된 게 신기해요.

두 번째로는 하나의 아이디어가 조직 내에서 많은 사람들에 의해 구체화되고 실현되는 과정을 바로 곁에서 함께했는데, 그 과정에서 신기함을 느껴요. 지금 진행되고 있는 ‘페이지 명동’ 프로젝트도 그렇고, 사실은 ‘이렇게 되면 어떨까?’하는 상상에서 시작된 거잖아요. 마지막으로는 10명 남짓한 인원에서 최근에는 40명 정도로 인원이 늘어나면서 이전과는 분위기가 또 다르게 변했다는 점도 신기하게 느껴지고요.

더함 시조새(?)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정지영 팀장, 김영 매니저, 서동규 매니저, 황지성 매니저. (사진 하단에 맥주와 소주가 보이는 듯한 건 느낌 탓이다)

Q.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으신가요?

저희가 현재 내부 커뮤니케이션 툴로 슬랙이라는 툴을 활용하잖아요. 여기에 ‘명령어’라는 기능이 있는데, 어떤 단어를 입력하면, 입력해 둔 값이 뒤이어 나오도록 하는 기능인데요. 예전에는 워낙 규모가 작고, 회사 안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일들도 다 공유되다 보니, 명령어로 경직될 수도 있는 업무분위기를 가끔 웃음으로 바꾸는 포인트들이 많았어요.

더함이 삼각지 오피스텔에 사무실을 꾸렸을 때 일인데요. 건물 1층에 있던 편의점에서 핫바를 팔았는데, 어느 날 핫바를 사먹었는데 너무 맛있는 거예요. 제가 사무실을 다 돌아다니며, “천 원으로 얻을 수 있는 최고의 효용감을 찾았다”라고 말했어요. 그 영향인지 오후만 되면 핫바가 다 팔려서 없는 거예요. 그때 이후로 <핫바>라는 명령어가 생겼죠. 지금도 슬랙에 <핫바>라고 치면 <맛있다.. 그러나 오후에는 없다>라고 결과값이 나옵니다. 그런 소소한 일상들이 재밌었어요. 지금은 추억 너머로 사라진 명령어와 에피소드들이 많은데, 앞으로도 이런 에피소드들이 계속 생성된다면 좋겠어요.

더함의 초창기 때에는, 커뮤니케이션 툴인 슬랙의 ‘명령어’ 기능을 활용한 놀이가 종종 있었다. 지금은 잘 사용하지 않는 명령어들에는 더함의 아기자기한 일상, 이야기가 녹아들어 있다.

# 일과 삶에 대한 실험은 계속 진행 중

Q. 쉴 때는 무엇을 하시나요?

최근에 시간에 대한 고민, 일과 삶을 조율하는 것과 관련한 고민이 많아요. 특히나 누구와 보내는 시간인지에 대한 고민이 있어요. 퇴근 후나 휴일에는 아내, 그리고 강아지와 시간을 많이 보내려 합니다. 더함은 일과 삶을 조율하는 실험을 하기에 좋은 조건인 것 같아요. 야근을 강요 안 하는 분위기인 점도 그렇고요. 물론 일이 많을 경우 가끔 집으로 가져오기도 하지만, 저녁을 먹고 쉬다가 집중이 될 때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건 좋은 점이죠.

Q. 탬버린 연주가 수준급이라고 들었는데, 정말 사실인가요? (팩트 체크!)

그렇게까지 수준급은 아니고요. 즐기는 정도입니다. 노래방에 다녀온 다음날이면 다리에 멍이 들어 있거나 손에 생채기가 나 있는 정도? (웃음) 그렇게 스트레스를 푸는 것 같아요. 대신 노래방에 다녀오면 너무 힘드니까, 월 1회로 제한을 하고 있기도 합니다. 월 2회는 너무 힘듭니다.

Q. ‘업’(業)에 대한 관점을 말씀 주시기도 했는데요, 본인의 업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어떻게 정의내릴 수 있을까요?

저는 스스로를 ‘소셜 디자이너’라고 생각해요. 첫 직장이 희망제작소여서 그럴 수도 있는데요. 희망제작소에서는 명함에 ‘연구원’이라고 직함을 달기도 하지만, 그 아래에 ‘소셜 디자이너’라고 적거든요. 사회를 새롭게 고민하고 디자인하고 만드는 사람들이라는 뜻인데, 저는 여전히 제 정체성을 그렇게 가져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 정체성 안에서, 내가 하고 있는 일이나 더함이 하고 있는 일들이 사회와 어떻게 접점을 만들어 내는지 계속 고민을 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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