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ight

ON PORTLAND : “GO AND GET INSPIRED”

from 김영철

[from더함] 더함피플의 생각, 일상, 특별한 순간들을 나눕니다. 서로의 이야기에 대한 이해와 공감으로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더불어 소소한 이야기들이 모여 더욱 풍성해질 더함을 기대해봅니다.

※ 이 에세이는 2019년 6월 7일부터 14일까지 포틀랜드에 방문한 후 작성한 글입니다.

당신에게 여행이란 어떤 의미입니까

여행 에세이를 읽을 때마다 느끼는 기묘한 기시감과 불편함이 존재합니다. 작가들에게 여행이란, 인생의 터닝 포인트이자 새로운 출발의 시작점입니다. 그들은 여행에서 언제나 새로운 외국인 친구를 사귀고, 현지 문화와 전통을 꿰뚫어 읽어내며 그에 쉽게 공감하고 녹아 들어가는 멋진 재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들은 항상 여행에서 무언가를 얻어 올 뿐 아니라, 놀랍게도 그 무언가는 인생을 통관하는 진리나 통찰인 경우가 많습니다.

거기까지는 괜찮습니다. 그들은 굳이 내가 묻지도 않은, 자신들이 여행에서 얻은 진리를 나에게 알려주려고 하며, 내 여행 또한 구도(求道)의 장정이어야 한다고 은근슬쩍 강요하면서, 목적과 얻음이 없는 저급한 유년기의 여행에서 졸업하라고 속삭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대답해 줘야겠죠.

“No, thank you.”

저는 숱하게 비즈니스 여행과 개인 여행을 다녀보았습니다만 여행에서 인생의 진리의 편린조차 만져본 적이 없습니다. 일주일쯤 지나면 슬슬 집 생각이 나고, 그보다 김치, 삼겹살, 소주라는 삼위일체에 대한 생각이 조금 더 나며, 엄마 생각은 아주 많이 나기 시작합니다. 여정은 언제나 고되며 계획대로 되지 않는 일이 대부분이고, 여행지의 풍광은 <론리플래닛(Lonely Planet) >에서 본 사진보다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생각이란 것을 해 보려고 풀밭에 누워 보면 벌레가 아주 많다는 단순한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저에게 여행이란 일하거나 노는 것입니다. 출장이면 열심히 일을 하면 되는 것이고, 개인 여행이라면 재미나게 놀고 늘어지면 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번 여행은 시작부터 달랐습니다.

Go and get inspired

“포틀랜드에 한 번 다녀옵시다.”

“출장 목적은 뭐죠?”

“포틀랜드라는 도시를 경험하는 것?”

포틀랜드는 소위 말하는 “힙(hip)”한 도시입니다. 주류 산업과 소상공업계의 조화, 외부 문화에 대한 존중과 지역 사회에 대한 자부심의 균형, 다양성에 대한 포용 및 관용 등으로 유명하며, “살기 좋은 도시”를 꼽을 때마다 몇 년째 높은 순위에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도시 자체를 계획하고 만들어 나가는 사람들의 논의―도시에 대한 계획 수립(planning)과 실행, 도시의 지속 가능성 담보, 상향식 거버넌스 도입 및 유지 등―에도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도시지요.

그런 도시에 출장을 가서 도시 자체를 경험하라는 것은, 잡힐 듯 말 듯, 알 듯 말 듯한 무언가를 잘 찾아서 얻어오라는 말과 비슷하게 들렸습니다. “가서 영감이나 좀 얻어서 와(Go and get inspired)”랄까요.

그래서, 포틀랜드에 살고 싶습니까?

이번 출장에서 얻어와야 하는 것을 정확히 정의하기는 힘들었지만, 다만 한 가지 ‘억지 결론만은 피해야 한다’는 생각은 명확했습니다.

포틀랜드로 출발하기 전, 포틀랜드에 대한 책을 여러 권 읽었습니다. 포틀랜드라는 브랜드 자체에 주목해 포틀랜드를 방문했고, 몇 개월 체류했던 사람들의 이야기였습니다. 대부분의 이야기는 포틀랜드에 대한 찬양일색이었습니다. 포틀랜드는 다르고, 다양하고, 존중하고, 맛있고, 멋있고, 편리하고, 비싸지 않으며 무엇보다 그렇기 때문에 “살기 좋다”고요.

이런 결론은 포틀랜드에 대한 기존 담론들의 방향을 고려하면 도달하기 가장 쉽고 또 안전하기 때문에 저 또한 이 결론으로 에세이를 작성하고자 하는 유혹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도시에서 “살아간다”는 것이 단순히 “머무른다” 또는 “즐긴다”와 같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서울을 예로 들어 보면, 서울의 시민들은 서울을 소비함과 동시에 서울의 어느 곳에서 끊임없이 무언가를 생산하고 있습니다. 즉, 우리는 도시의 생산자이면서 동시에 소비자인 것이죠. 다들 잘 아시겠지만, 여행은 대부분 즐거운 경험으로 가득 찰 수밖에 없습니다. 여행을 통해 이루어지는 대부분의 행위가 기본적으로 소비 행위이고, 우리는 그저 손님이기 때문입니다.

한편, 생산자의 관점에서 도시는 어떤가요? 생산자로서 도시에서 살아가는 것에는 언제나 유쾌한 경험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매일 이루어지는 출퇴근을 더 힘들게 하는 교통 체증과 매일 식도로 넘겨야 하는 맛없고 비싼 점심식사, 직장에서의 경직된 분위기와 위계, 업무 자체의 중압감 등 우리가 견뎌 내야하는 많은 것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생산자와 소비자 양쪽 모두의 위치에서 도시와 서로 연계될 때, 비로소 그 도시에서 “살아간다”라고 말합니다. 따라서 방문객과 이방인으로서 도시를 관찰하고 즐기는 것만이 아니라, 그 도시에서 살아감에 따라 감당해야 하는 의무와 도시의 유쾌하지 못한 측면을 수인하는 것까지 가능할 때 비로소 우리는 어떠한 도시에 “살고 싶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저의 이번 출장은 본질적으로 포틀랜드가 살기 좋은 도시인지를 평가할 자격을 갖추고 있지 못합니다. 저는 포틀랜드에 일주일 남짓 체류하면서 대부분의 행위를 소비에 집중한 채 도시의 밝은 면에 주로 집중할 수밖에 없는 이방인이기 때문입니다.

Keep Portland Weird

본격적으로 포틀랜드와 관련된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포틀랜드의 성격을 정의하는 많은 말 중에서도 대표적인 문장으로, “Keep Portland Weird”가 있습니다. Weird 라는 단어는 ‘기이하다’고 직역됩니다만, 많은 맥락에서 주류에서 빗겨선, 그러면서도 주관이 뚜렷하고 본인이 옳다고 견지하는 가치에 대해서는 양보가 없는 듯한, 복합적인 인상을 가지고 있는 단어입니다. 포틀랜드의 도전 정신과 창의성을 대표하는 표현으로 자주 회자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선 저 표현의 시작은 별로 창의적이지 않습니다. 저 문장 자체를 오스틴의 “Keep Austin Weird”에서 차용해 왔기 때문입니다.

포틀랜드에 체류하는 동안 몇 번 이상한 문답을 들었습니다.

첫 번째는 스타벅스에서 손님이 엑스트라 샷을 추가한 콜드브루를 주문할 때였습니다. 아시다시피 콜드브루는 에스프레소 샷 베이스의 음료가 아닌데, 거기에 굳이 엑스트라 샷을 넣어달라는 주문이었습니다(맛이 궁금하기는 했습니다).

두 번째는 ‘Good Coffee’라는 로컬 브랜드 카페에서 손님이 커피를 주문하면서, Hot/Iced 와 사이즈를 점원에게 결정해 달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점원은, 약간 고심하기는 했으나, 손님이 흡족해할 만한 결정을 대신 내려주었습니다.

이런 에피소드들은 포틀랜드가 Weird 하다는 증거가 될 수 있을까요?

당연히 아닙니다. 일단 사례의 모수가 지나치게 적기도 하지만, 실제로 포틀랜드 시민 중 상당수가 저런 식으로 행동한다고 해도, 그것이 포틀랜드가 본질적으로 주장하는 Weird 함은 아닐 것입니다. 이상한 것과 창의적인 것은 당연히 같은 말이 아닙니다.

한때 한국에서 “B급 감성”이라는 말이 유행했습니다. 그 당시, 주류 상업 영화를 좋아하는 친구들이 B급 감성 영화를 억지로 관람하면서 스스로를 B급 감성을 가진 사람으로 정의하는 것을 곁에서 지켜보는 것은 무척이나 고역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창의적인 척하는 것과 창의적인 것은 다릅니다. 세계 수염 대회에서 우승한 사람이 포틀랜드에 살고 있다는 사실은 포틀랜드를 Weird한 도시로 만드는 데 전혀 기여하고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포틀랜드인들이 상당히 진취적이고 모험적이며, 위험을 감수하고 도전을 즐기는 사람들이었던 사실에서, 그리고 포틀랜드인들이 포틀랜드를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한 몇몇 사례를 통해 현재 포틀랜드의 정체성을 추론해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오리건 트레일(Oregon Trail)

미국 북서부 개척의 주역 중 하나인 오리건 트레일. 인류 역사상 최대 규모의 인구 이동을 이루어 냈으며, 현재 미국의 영토 범위를 형성하게 한 의미 깊은 이동경로이다. (사진 제공: Wikimedia Commons)

오리건 트레일로 대표되는 미국 북서부의 개척 이야기는 미국 서부극으로 상징되는 캘리포니아를 배경으로 한 골드러시만큼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라는 건 어디까지나 우리 생각이고, 미국에서 오리건 트레일은 미국 개척자 정신의 표상 같은 이야기로, 이에 대해 모른다는 건 마치 한국인이 임진왜란과 이순신 장군을 처음 들어보는 것과 다름없는 것이라 하네요(물론 저도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서부 개척 이전, 미국은 크게 지리적으로 3분할되어 있었습니다. 동부의 상업지역, 남부의 농업지역, 그리고 서부의 사막으로 말이죠. 세계적으로 미국의 위상 또한 영국의 식민지 중 하나인 변방 국가 정도였습니다. 그러던 미국이 독립전쟁을 통해 대영제국으로부터 독립함으로써 자신감을 얻은 데 더해, 미 대륙의 서부 연안까지 공식적으로 확장하여 태평양과 대서양이라는 두 대양과 맞닿은 영토를 가진 명실상부한 강대국으로 부상하게 되었는데요. 오리건 트레일은 열사의 사막과 험준한 로키산맥을 넘어서 인류 역사상 최대 규모의 인구 이동을 이루어 내며, 현재 미국의 영토 범위를 형성하게 한 아주 의미 깊은 이동 경로를 말합니다.

루이스와 클라크에 의해 1800년대 초 처음 개척된 이 루트는 이후 1800년대 중반부터 십수 년에 걸쳐 미국 서부로의 이주를 희망하는 개척자들의 무리가 실제로 삶터를 이전하는 루트로 사용됩니다. 십수 년에 걸쳐 이동한 사람의 숫자가 40만 명에 이를 정도의 대이동이었고, 이는 앞서 말씀 드린 바와 같이 인류 역사상 최대 규모의 단일 인구 이주에 해당합니다.

그리고 이 오리건 트레일의 최종 종착지가 바로 포틀랜드였습니다. 포틀랜드라는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처음 도시의 이름을 명명한 사람들의 상상력의 빈곤함에 혀를 내둘렀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포틀랜드 바로 옆 도시 이름이 우드랜드(Woodland)이고, 그 옆은 번우드(Burnwood)입니다. 뭐… 목재를 자르고 가공하고, 필요 없으면 태우고, 잘 가공된 것들은 항구를 통해 내보내고, 그런 맥락에서 붙여진 이름들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실제 맥락을 알고 보니 더욱 놀라웠습니다. 당시 포틀랜드에 처음 도착해 정착했던 무리 중 지도자가 둘이 있었는데, 한 명은 메인주 포틀랜드 출신이었고, 다른 한명은 메사추세츠주 보스턴 출신이었습니다. 그래서 둘은 각각의 고향을 기념하여 자신의 고향 이름으로 새로운 도시를 명명하고 싶어 했습니다. 그래서 둘은 동전 던지기로 도시 이름을 결정했고, 그래서 이 도시는 포틀랜드가 되었습니다(이때 사용한 동전은 지금도 ‘Oregon Historical Society’라는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오리건 트레일은 2,170마일(3,490km)입니다. 차로 가기에도 아찔할 만큼 먼 거리입니다. 이를 개척자들은 마차에 의지해서 나아갔습니다. 오리건 트레일이 위 사진의 루트로 확정된 것에는 별다른 이유가 있지 않습니다. 단지 그 루트에 있는 산들이 가로질러야 하는 로키 산맥 중 가장 낮았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네비게이션도 없었던 그 시절, 나침반과 경험, 풍문에 의지하여 개척자들은 사막과 강, 산맥을 건넜습니다. 그리고 나무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던 지금의 포틀랜드에 집을 짓고 공장을 만들고 길을 내었습니다.

1884년 9월, 이미 삶을 꾸려나가고 있던 개척자들은 포틀랜드의 공원에 모여 오리건 트레일 자체에 대한 작별 파티를 열었습니다. 이 파티에는 워싱턴, 오리건, 아이다호 주의 개척자들 5천 명이 모였습니다. 당연히 각자의 삶터에서 포틀랜드까지 마차를 타고 집결했습니다. 이들이 오리건 트레일에 작별을 고한 이유는, 마침내 대륙 횡단 철도가 완공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제 이들을 끝으로, 더 이상 미국 동부에서 서부 끝까지 마차를 타고 오는 사람을 없을 것이었습니다. 공원에 모인 이들의 행렬은 끝이 없었고, 밤을 지새우며 사람 숫자만큼 존재하는 대륙 횡단기를 서로 나누며 웃고 마셨습니다. 그리고는 마차를 타고 돌아가기에는 너무 먼 거리라 열차를 이용해 집으로 돌아갔다고 합니다.

우리는 낭만이라 읽지만 그들은 고난이라고 썼던, 그 긴 여정을 완전하고 불가역적으로 종결시켰던 그때 그들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스티브 잡스와 일론 머스크를 통해 면면히 이어져 오는 그들의 개척 정신을 보고 있노라면 그들이 이루어 낸 것은 역시 물리적이고 지리적인 이동 그 이상의 것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Pacific Northwest
– 아웃도어, 나이키 그리고 컬럼비아 스포츠웨어

사실 포틀랜드와 포틀랜드가 속한 오리건 주는 독립적으로 생각하기보다는 소위 말하는 “북서태평양 연안(the Pacific Northwest, 이하 ‘퍼시픽 노스웨스트’)”의 일부로 생각하는 것이 좋습니다. 퍼시픽 노스웨스트는 오리건 주에서 워싱턴 주를 지나, 하나의 지리적, 경제적 권역으로 구분되는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주의 벤쿠버까지를 아우르는 권역을 일컫습니다.

이곳의 공통점은 (식상한 표현이지만) 천혜의 자연환경입니다. 위도가 상대적으로 높은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멕시코 만류의 영향으로 사계절 내내 기후가 온난하고, 기가 막힌 해안선을 자랑하며, 동시에 빙하와 협곡을 동시에 감상할 수 있는 산맥과, 3천 미터가 넘는 고봉들이 여러 개 자리하고 있습니다. 마운트 레이니어 국립공원, 올림픽 국립공원, 퍼시픽 림 국립공원 등 이름만 들어도 설레는 수많은 자연경관들이 운집해 있는 지역입니다.

도시 곳곳에서 포틀랜드의 경이로운 자연 경관을 자랑하는 메시지들을 볼 수 있다. (사진 제공: 김영철)

이번에 제가 체류했던 시애틀, 포틀랜드 곳곳에 위 사진과 같은 메시지들이 있었습니다. 제가 대화했던 사람들 중 상당수도 비슷한 뉘앙스를 풍겼습니다.

“내일 뭐해요?”

“도시를 둘러보려고요.”

“…”

잠깐의 침묵 속에서 저는 이런 이야기를 들은 것만 같았습니다. “What the hell are you gonna do in the city? Go enjoy mother nature which is waiting for you, dumbass(도시 따위에서 도대체 뭘 하려는 거야, 얼른 밖으로 나가라고 이 멍청아)”

이곳의 사람들에게 아웃도어는 필수불가결한 요소였습니다. ‘도시에서의 삶’이라는 것 자체가 여가 시간에 자연을 즐기는 것을 포함하는 개념으로 읽힐 정도였으니까요.

잘 알려진 바와 같이 포틀랜드는 나이키와 컬럼비아 스포츠웨어의 헤드쿼터가 위치한 곳입니다. 실제로 지역 박물관에도 두 기업의 역사가 전시되고 있을 정도로 지역 시민들의 자긍심의 원천 중 하나였습니다.

포춘지 선정 500대 기업에 속하는 나이키에 대해서 중언부언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을 것 같습니다. 단지 창업자가 와플 굽는 기계에서 착안해 신발 밑창을 처음으로 격자무늬로 디자인했던 아래 와플 트레이너 러닝슈즈는 상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포틀랜드에는 나이키의 헤드쿼터가 위치하고 있다. 사진은 창업자가 와플 굽는 기계에서 착안해 개발한 밑창이 격자무늬인 나이키 운동화. (사진 제공: 김영철)

사실 저는 아웃도어 브랜드나 스포츠웨어에 그렇게 관심이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컬럼비아 스포츠웨어는 이번 출장 전에는 이름만 아는 정도였습니다. 출장을 통해 알게 된 컬럼비아 스포츠웨어는 말 그대로 퍼시픽 노스웨스트가 낳았고, 퍼시픽 노스웨스트를 사랑하는 마음이 충천한 기업이었습니다.

나이키가 생각보다 최근인 1971년에 설립된 반면, 컬럼비아는 나치 독일을 피해 이민 온 사람들에 의해 1938 년에 창업한 오래된 기업입니다. 이 회사는 낚시 조끼의 대명사처럼 된 ‘멀티 포켓 피싱 베스트’를 개발, 공급했는데 이 조끼는 컬럼비아 강에서 낚시를 즐기는 낚시꾼들이 입고 있던 조끼에서 아이디어를 차용한 것이었습니다. 1970년대에는 방수와 방풍 기능이 탁월한 고어텍스를 처음으로 시판했고, 1982년에는 아우터와 이너 재킷을 같이 입거나 분리해서 입을 수 있는 인터체인지 스타일을 도입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은 단순히 책상머리에서 이루어진 혁신이 아니라, 실제로 퍼시픽 노스웨스트의 아웃도어를 삶 속에서 즐기고 그에 대해 엄청난 애착과 자긍심을 가진 수많은 시민들에 의해 테스트되고 피드백되었으며, 그를 기반으로 개선되고 혁신된 결과물이 축적된 것입니다. 이미 100세에 이른 CEO인 거트 보일 회장은 수십 년째 “테스티드 터프(Tested Tough)”라는 이름의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 캠페인은 소비자들이 컬럼비아의 아웃도어를 더 오랫동안 즐길 수 있도록, 대자연과 변화무쌍한 기후 속에서 제품테스트를 진행하는 것으로, 한국의 소비자들에게는 유머러스한 광고를 통해 많이 알려져 있기도 하죠. 퍼시픽 노스웨스트의 자연 환경에서, 퍼시픽 노스웨스트 시민들에 의해 검증된 것이라면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자신 있다는 표현입니다.

아웃도어 브랜드인 ‘컬럼비아’는 본사가 위치한 포틀랜드의 기후 환경을 활용하여 자사 제품의 품질을 평가하는 “테스티드 터프(Tested Tough)” 캠페인으로 유명하다. 위 이미지는 ‘테스티드 터프’를 광고 마케팅에 활용한 사례이다. (사진 출처: 컬럼비아 공식 유튜브 화면 갈무리. 영상 링크)

제가 가장 마음에 들었던 마케팅 프레이즈 세 개는 다음과 같습니다.

– Tested tough in the Pacific Northwest where we never hibernate.

– Tested tough in the Pacific Northwest where we choose trails over treadmills.

– Tested tough in the Pacific Northwest where we use umbrellas as firewood.

퍼시픽 노스웨스트의 자연환경에 대한 애착과 자긍심을 느낄 수 있는 미국 글로벌 아웃도어 브랜드 컬럼비아의 마케팅 프레이즈. (사진 제공: 김영철)

결코 잠들지 않고, 러닝머신보다는 길 위를 탐험하며, 우산 따위 땔감으로나 사용하는 곳에서 검증되었다는 말이죠. 이들이 가진 자연 환경에 대한 자부심, 아웃도어에 대한 열망, 자신의 고향에 대한 사랑은 어떤 느낌일지 상상하기 어려웠습니다.

지역 사회를 사랑한다는 것은 과연 어떤 것일까요

포틀랜드의 파월서점 서가 중 일부. 지역사회에 관한 다양한 책들이 꽂혀 있다. 시민들이 얼마나 지역사회와 도시, 자연을 사랑하는지 느낄 수 있었다. (사진 제공: 김영철)

위 사진은 포틀랜드에 위치한 그 유명한 파월 서점의 ‘지역사회의 자연’에만 한정된 서가입니다(지역 사회의 문화, 지역 사회의 음식, 지역 사회의 생활상 등에 대한 수많은 책들이 별도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자연 안에서의 주제도 너무도 다양합니다. 여행, 도보 여행, 아이와 함께하는 여행, 반려견과 함께하는 여행… 이렇게 다양한 지역사회에 대한 책들이 계속 출간되고 있다는 건 이 책들에 대한 수요가 있다는 것을 의미하겠지요.

지역사회와 도시, 자연에 대한 시민의 애정과 사랑, 그 안에서 포틀랜드와 포틀랜드 사람들, 포틀랜드 기업들의 경쟁력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자연을 보지 않고 도시에서 도대체 뭐하냐’는 따가운 시선을 느끼며, 포틀랜드 시민이 추천해 준 컬럼비아 강 협곡(Columbia River gorge)을 다녀왔습니다. 포틀랜드 도심에서 30 분~1시간 정도 걸리는 곳에 있는 협곡이며, 국립 자연 경관(National Scenic Area)으로 지정된 곳이었습니다. ‘내가 포틀랜드 도시를 보러 왔었다’는 생각을 까맣게 잊을 정도로, 웅장한 광경이었습니다. 제가 도시를 보는 이유는, 도시가 자연 풍광보다 더 매력적이어서가 아니라, 도시를 목적지로 삼았기 때문이었죠. 그 장대한 강을 보고 있자니, 포틀랜드 시민들의 주변 환경에 대한 자부심을 알 것 같았습니다.

Columbia River gorge에 위치한 Vista House (사진 제공: 김영철)

밀 엔즈 파크(Mill Ends Park)

포틀랜드 다운타운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에 위치한 워터프론트 공원 바로 옆에는 ‘세계에서 가장 작은 공원’으로 기네스에 등재돼 있는 “밀 엔즈 파크(Mill Ends Park)” 공원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사실 왕복 4차선 도로 한가운데 있는 맨홀 같은 느낌이라 누가 특정해서 알려주지 않으면 이게 공원인지 알 수가 없는 수준입니다. 지름이 60cm 정도에 불과한 이 공원은, 원래 가로등을 만들기 위해 확보된 장소였습니다. 그러던 중 <오리건 저널>(Oregon Journal)의 칼럼니스트였던 딕 페건(Dick Fagan)이 이 장소에 꽃을 심고는 자신의 칼럼의 이름을 따 “Mill Ends”로 명명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작은 공원, 밀 엔즈 파크(Mill Ends Park) (사진 제공: 김영철)

일설에 따르면 페건은 기사를 제때 송고하지 않기로 유명했고, 몇 번 기한을 어겨서 편집장에게 주의를 받았습니다. 처음 이 공원에 대해 칼럼을 썼던 날은 편집장으로부터 최후통첩을 받은 날이었습니다. 편집장은 페건이 두 시간 내로 기사를 데스크 위에 올려놓지 않으면 그날로 해고당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았습니다.

딱히 쓸 거리가 없었던 페건은 아일랜드 설화를 빌려와 이야기를 꾸며 냅니다. 페건 자신이 설화에 등장하는 요정 레프리컨을 우연히 발견하고 붙잡았는데, 레프리컨은 자신을 풀어주면 소원을 들어준다는 말로 페건을 설득합니다. 페건은 “자신만의 공원을 가지고 싶다”는 소원을 말했는데 공원의 크기는 깜빡하고 말하지 않은 터라, 영악한 이 요정이 지름 60cm 정도의 공원을 주었다고요.

요정 레프리컨 (사진제공: Wikipedia)

그냥 듣기에도 시답잖은 이 이야기를 편집장이 좋아했을 리가 없었겠지요. 그렇지만 지면을 비워둘 수는 없으니 울며 겨자 먹기로 칼럼을 내 보냈습니다. 그런데 이게 공전의 히트를 치게 되었습니다. 어린이들이 너무 좋아했던 거죠. 신문사로 레프리컨에 대한 문의와 부모들의 연재 요구가 빗발쳤고, 신문사에서는 밀 엔즈 파크와 레프리컨에 대한 이야기를 꾸준히 연재하게 됩니다.

더 나아가, 이 이야기를 사랑한 시민들은 밀 엔즈 파크를 정식 ‘공원’으로 지정해 줄 것을 포틀랜드시에 정식으로 요청하였습니다. 처음에 포틀랜드 시장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로 치부해 요청을 수락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시민들은 포기하지 않았고, 6년에 걸친 노력 끝에, 공원 지정에 찬성하던 인사가 시장 선거에서 당선하게 됨에 따라 밀 엔즈 파크는 포틀랜드 시의 정식 공원이 됩니다. 그 후 시립공원답게 시의 공식 관리를 받게 되고 예산도 배정되었습니다. 2019년 현재 한 해 예산은 무려 1만 달러에 달합니다.

사실 밀 엔즈 파크가 시가 지정한 정식 공원인지 여부와 예산 규모의 적정성에 대해 우리가 논할 필요는 전혀 없을 것입니다. 그것보다는 밀 엔즈 파크를 공식 공원으로 지정하고자 한 동기가 어린이들의 동심을 지키고자 하는 데 있었다는 것, 그것이 옳다고 믿고 실행으로 옮기는 시민이 존재했다는 것, 그리고 그 작고 어떻게 보면 합리적이지도 않은 소수의 의견이 오랜 시간이 걸리기는 했지만 결국은 관철될 수 있었다는 것, 이 사실들에서 포틀랜드의 또 하나의 저력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당신은 당신의 도시를 사랑하십니까?

포틀랜드는 많은 영욕의 역사를 가진 도시입니다.

오리건 주는 노예제도에 반대했지만 자유로운 흑인을 용인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흑인 노예였던 사람들을 49대씩 매질을 해서 주 밖으로 추방하는 법을 통과시키기도 했습니다. 원주민이었던 인디언들과의 뿌리 깊은 반목은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포틀랜드는 제가 다녀 본 미국의 20여 개 도시 중 가장 ‘덜 위협적인’ 도시였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제가 미국에 올 때마다 느끼는, ‘이방인’, ‘주변인’ 또는 ‘2등 시민’의 느낌을 받지 않는 것은 물론 아닙니다. 아래와 같이 포틀랜드는 다양성을 존중하고 포용함을 내세우고 있으며 제가 만난 포틀랜드인들은 모두 완벽할 정도로 친절했습니다만, 그것이 이들 개개인이 진정으로 포용성을 가졌다는 것과 동의어는 당연히 아닐 것입니다. 그럼에도 지역사회와 도시에 대한 그들의 자부심과 자긍심, 그리고 자부심에 합치하는 도시를 만들고 유지해 가고자 하는 노력은 인상적이었습니다.

인종, 종교, 출신 등에 상관 없이 모든 사람들을 존중하고 포용하는 포틀랜드 정신 (사진 제공: 김영철)

이번 여행에서 가장 스스로에게 많이 던진 질문은, ‘나는 과연 내가 살고 있는 도시를 사랑하고 있는가’였습니다. 광역 인구가 1천만을 훌쩍 넘어버린 세계 최대의 메트로폴리스 중 하나인 서울에서 이미 20년째 생활하고 있지만, 저는 여전히 서울에서 이방인인 것처럼 살아가고 있습니다. 서울을 정말정말 좋아한다고 말하지 못하는 이유는 어쩌면 서울이 저의 삶터이자 일터이며 그리고 놀이터이기도 하기 때문은 아닐지, 즉 단맛만 있고 쓴맛은 없는 여행지가 아니라 내가 온전히 생을 살아나가는 ‘나의 도시’이기 때문이 아닐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서울을 좋아하기 위해,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조금씩 더 노력해 보아야겠다는 생각도 가져보았습니다.

그래서 포틀랜드에 살고 싶냐고요? 아니요, 이름과 얼굴만 보고 사랑에 빠질 수는 없으니까요.

그래서 영감을 받았냐고요? 어쩌면 조금쯤 그런 것 같다고, 애매하게 대답하고 싶네요.

뱀다리

재미있는 이야기가 훨씬 더 많은데 절반도 풀어놓지 못했습니다. 한 편의 에세이로는 충분히 이미 긴 것 같아서요. 만약 더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술, 커피, 음식, 풍경, 여행 그리고 시애틀에 대해 들려드리고 싶네요.

몇 가지만 간단히 사족을 붙입니다.

– 음식은 한국, 특히 서울이 최고라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것 같습니다. 무슨 유명한 도넛집이 있다고 해서 가 봤는데, 도넛은 맛있어봐야 도넛일 뿐, 평양냉면이나 김치찌개인 것은 아니니까요.

– 교통 시스템은 잘 되어 있습니다. 그렇지만 서울이 압도적으로 선진적이고 더 편리합니다. 이곳의 승차권 발매 키오스크는 1980년대 150원짜리 밀크커피를 팔던 자판기 수준입니다. 그렇다고 더 똑똑해질 필요가 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충분히 적정하니까요.

from 김영철

낭만디벨로퍼. 더함 운영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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