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and Culture

이곳은 30년간 제 손을 안 거친 데가 없는 건물이죠

페이지 피플 인터뷰
사회혁신기업 더함 신성균 팀장

[페이지 피플] 코로나19 확산으로 곳곳이 얼어붙어 가던 서울의 중심부, 명동. 여기에 단절된 관계를 연결하고 공간의 가치를 새롭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변하는 시대 속, 예술과 문화에 대한 담론이 오갔던 명동의 정신을 재해석하고 현재로 연결해냅니다. 그리고 그들의 가치는 한국YWCA연합회관을 리모델링한 소셜커뮤니티타운, 페이지 명동으로 거듭났습니다. 페이지 명동을 통해 변화를 추동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Q. 간단한 자기 소개 부탁드립니다.

페이지 명동 건물 및 시설 관리를 총괄하는 신성균 팀장입니다. 제가 실은 한국YWCA연합회 건물이던 시절부터 이 건물 관리를 30년 넘게 맡아 왔어요. 그러던 중 페이지 명동으로 리모델링하는 사업이 결정되었던 거죠. 건물 구석구석 어떤 시설이 있고, 어떻게 관리되어 왔는지 제가 다 알고 있는 ‘증인’이거든요. 해서 공사 전반을 관리감독하는 총감독관으로 참여하게 됐어요.

Q. ‘명동의 터줏대감’이라고 불릴 정도로 이 지역 마당발이시라 들었습니다.

네, 아무래도 이곳에서 오래 일했으니까요.

명동에서 오래 일을 하다 보니, 이 근처에서 오래 장사한 분들 중 안 친한 사람이 없을 정도죠. 제가 전기 쪽 전문이에요. 그러다 보니 주변의 친한 상인분들이 뭐가 망가졌다 하면 다 전화를 저에게 주셨어요. 수리해 드리면서 더 교류가 많아지고, 밥도 많이 얻어먹었어요. 우스갯소리로 이 근방에 숟가락 하나 들고 다니면 다 얻어먹을 수 있다고 할 정도로 친해요. 제가 이 근처에서 전기집을 했어도 참 잘 됐을 텐데 말입니다. (웃음)

Q. 30년이라는 시간을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이곳에서 일하며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을 몇 가지 꼽아 주신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1980년대 민주화 운동으로 많은 시위대가 성당 앞 광장을 점거하며 농성했던 일도 기억에 남고요. 1995년 한국통신(현 KT) 노조 조합원들 5천여 명이 파업하며 명동성당 앞을 점거했던 일도 기억에 남네요.

1980년대에 한창 집회가 있을 당시에는 출입증이 없으면 명동 거리에 들어오지도 못할 정도였어요. 유리창이 숱하게 깨지고, 최루 가스도 자주 마셨어요. 일을 하기가 어려울 정도였죠. 그때 전경들을 피해 도망치는 학생들을 건물 지하로 들여보내 준 적도 있어요. 숨어 있다가 지금 마실 주차장 쪽으로 나가도록 안내하기도 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2002년 김수환 추기경님 선종하셨을 때에도 인파가 정말 많았네요. 조문 행렬이 명동역까지 이어질 정도였어요. 기자들이 저희 건물 옥상에 올라가 사진 찍을 것이 예상되었기 때문에 선종하시기 전 미리 난간을 설치해 두기도 했습니다.

Q. 명동의 변화 과정을 아주 가까이에서 지켜보셨는데, 예전 명동은 어떤 곳이었나요?

잘 아시겠지만 옛날 명동은 정말 ‘최고의 거리’였어요. 예술이며, 최신 유행이며… 낭만적인 분위기 면에서도 그랬죠.

옛날에는 맛집도 참 많았어요. 소공동 뚝배기집부터, 옛날 할머니 국수, 명동 칼국수, 내림손 삼계탕과 고봉 삼계탕, 명동 뒷길의 고추장삼겹살집, 아바이순대집, 매운낙지집, 양푼이 김치찌개집, 섞어찌개집… 작고 허름한 시절부터 다 함께했던 단골집들이에요. 그런데 요즘은 충무로 쪽으로 가야 맛집을 더 찾을 수 있게 됐어요.

지금 마실 앞 CU 편의점 있는 곳은 예전에는 ‘타임다방’이었어요. 페이지 명동 앞쪽에서 예전에 ‘수와진’이란 그룹이 노래를 불렀던 기억이 나네요. 송창식 씨, 노사연 씨 같은 포크 가수들도 명동에 많이 왔었죠. 그리고 예전엔 명동에 포장마차가 엄청 많았어요. 젊었을 때는 옆집으로, 옆집으로 그렇게 계속 이동하면서 술을 먹었어요. 포장마차가 끝나는 데쯤에선 엄청 취하는 거죠. (웃음)

그러다 어느 순간 외국인 관광객이 많아지기 시작했는데, 저는 그걸 나쁘다고만 생각하진 않아요. 한국에서 제일 알아주는 도시이니, 외국인들도 알아보는 것 아니겠어요?

그랬던 명동인데, 지금은 낮에도 그렇고, 9시가 넘어가면 인적을 볼 수가 없죠. 이런 적은 처음이에요.

Q. 팀장님과 명동맛집 지도를 만들어 보아도 좋을 것 같습니다! 명동에서의 하루 루틴은 어떻게 되시나요?

처음 일을 시작할 때나 지금이나 출근 시간은 똑같아요. 제가 6시 10분이면 나오거든요. 아침 일찍 건물 전체적으로 점검하는데, 그래야 하루가 편해요. 어떤 날은 쉬는 날에도 잠깐 나와서 점검을 하고 가요. 그게 마음이 편하더라고요.

Q. 팀장님에게 이 건물은 어떤 의미일까요?

엄청나게 애착이 가는 공간이죠. 어느 한 곳 제 손을 안 거친 곳이 없을 정도로 구석구석 다 잘 알고 있어요.

그걸 떠나서도, 이 건물은 참 멋있는 건물 같아요. 명동의 옛 명성을 다시 찾는 그런 계기를 만들어 주는 공간이 되면 좋겠어요.

Q. 리모델링된 공간 중 가장 매력적이라고 느끼시는 공간은 어디일까요?

3층 테라스 공간이랑 7층 옥상이 가장 매력적인 것 같아요. 여기서 커피를 마시면서 명동을 바라보면 얼마나 좋겠어요?

특히나 3~4월에 명동성당이 아주 깨끗하게 보이는 시기가 있어요. 그때는 건물에 그림자도 안 지는 때인데, 그럴 때 건너편 성당에서 사진 촬영을 많이 하러 오시죠.

Q. 마지막으로 페이지 명동의 매력을 팀장님께서 한 단어로 표현하신다면 어떻게 표현하고 싶으신가요?

명동성당과 남산이 어우러진 멋진 뷰를 감상할 수 있는 최고의 장소요. 여길 찾아오시는 많은 분들도 그런 풍경을 누리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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