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and Culture

오늘을 충실히 기록하고 기억하며, 내일을 준비하는 사람

#커뮤니티실 정해민 매니저

[더함 피플 탐구] “타인과 함께, 타인을 통해서 협력할 때에야 비로소 위대한 것이 탄생한다”(by 생텍쥐페리). 일을 하면서 좋은 동료를 만나는 것만큼 큰 복이 또 있을까요? 서로 공감하고 협력하며 더함에 다양한 색채와 가치를 더해 가는 사람들을 만나 봅니다.

“나의 내일은 오늘 내가 무엇을 읽고 기억하려고 했느냐에 달려 있다.”

“내가 밤에 한 메모, 이것으로 나의 내일이 만들어질 것이다.”

– 정혜윤, <아무튼, 메모> 중에서

일상 속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정해민 매니저의 모습은 아주 작은 것도 잘 기록하고 기억하는 사람입니다.✍🏻 회의 때마다 꼼꼼히 메모한 내용을 깔끔한 형식의 문서📃로 정리해 주어 자리에 함께했던 모두를 놀라게 하는 사람이지요.

정혜윤 작가(CBS 라디오PD)의 통찰을 빌리자면, 메모를 잘하는 사람은 ‘조금씩이라도 더 나아지려 애쓰는 사람’, ‘중요하게 여기는 무언가를 붙잡아서 곁에 두려 하는 사람’일 텐데요. 해민 매니저는 작곡가의 꿈을 포기하고 음향 시스템을 공부한 1년 반이라는 시간 동안, 그날그날의 수업 내용을 빼곡하게 메모하여 스크랩북으로 만들었던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보내온 스크랩북 사진을 보며, 아마도 무척이나 불안했을 그 시기 동안, 앞에 놓인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내며 견뎠을 해민 매니저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스크랩북은 그의 자존감과 자산이 되었겠구나 싶었습니다.✨

해민 매니저는 현재 SH의 청년신혼부부주택 ‘청신호’의 홍보 공간과 커뮤니티 공간을 운영하며, 주거 문제로 어려워하고 때로는 좌절하고 있을 청년들을 가장 가까이에서 마주하고 있는데요. 여러 번의 좌절 속에서도 자존감을 지키며 성장해 온 이로서, 주거의제를 비롯한 다양한 청년의제에 공감하는 당사자로서 피부에 와닿는 지원 프로그램들을 기획할 것이라 기대해 봅니다.

# 뮤지션을 꿈꾸던 꿈나무,
뮤지션을 지원하는 서포터가 되다

Q.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현재 더함에서 무슨 일을 하고 계신가요?

저는 커뮤니티실 정해민 매니저이고요, SH청신호주택의 홍보관이자 청년들의 커뮤니티 활동 공간인 ‘청신호 명동’의 운영과 관련한 업무를 맡고 있습니다. 주되게는 ‘윗집’ 공간의 대관 스케줄을 관리하고요. 청년단체 지원 사업, 주거 의제를 다루는 아카데미 프로그램을 맡고 있습니다.

Q. ‘작곡’을 공부하셨다고 들었는데요. 언제부터 음악 쪽으로 진로를 고민하게 되셨나요?

사실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는 뭘 하고 싶단 생각이 전혀 없었어요. 그저 노래방에 가서 노래 부르는 걸 좋아하는 학생이었죠. 그러다 고2가 끝나갈 때쯤, 내가 뭘 좋아하고 뭘 하고 싶은지에 대한 고민을 본격적으로 하기 시작했어요. 당시 좋아하는 건 오로지 음악밖에는 없었기 때문에, 음악으로 진로를 택해야겠다 생각했어요.

Q. 음악 쪽으로 직업 선택을 하지 않으신 이유가 있었나요?

노래하는 걸 좋아했기 때문에 가수, 보컬이 되고 싶었지만, 이미 어렸을 때부터 기획사에 들어가 가수 준비를 하고 있는 사람들과 경쟁하기에는 이미 늦었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그렇다면, 이들에게 곡을 주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싶어서 작곡에 도전을 하게 됐죠. 제가 자발적으로 정한 첫 번째 목표였어요.

급하게 기타와 화성학을 배우며 입시 준비를 했고, 운이 좋게 작곡과에 진학했어요. 그런데 1학년만 하고 포기를 했어요. 아티스트들이 모여 있는 분위기에 잘 어우러지지 못했고 버틸 수가 없더라고요. 게다가 상대적으로 늦게 시작을 한 편이라 실력이나 상황이 잘 따라가질 못하니 자존감이 계속해서 떨어지더라고요. 이러느니 안 하는 게 낫겠다 싶어서, 군대를 다녀온 후 복학하지 않고 자퇴를 했어요.

그후에는 방향을 약간 틀어 ‘음향’에 도전을 했어요. 음향 장비를 어떻게 다루고, 소리를 어떻게 내보내는지 1년 반 정도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당시 아카데미에 1주일에 2번씩 수업을 들으러 갔는데, 모든 수업 내용을 한 컷 한 컷 사진으로 남겨서 스크랩북을 만들었어요. 선생님이 ‘미친 놈’이라고 할 정도로 열심히 매달렸어요. 많이 예뻐해 주셔서 마지막 두 달은 학원비를 안 받으셨죠. 워낙 정성껏 만들었던 거라, 그 책은 아직도 소중히 가지고 있어요.

그 과정을 통해 자존감을 다시 회복하고, 선생님 소개로 공연장에 들어가기도 했는데요. 음향 외에 조명, 전기 시스템 전반을 잘 다루어야 하는 현장이었어요. 열심히 음향을 배워 왔는데, 그 외의 것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라 공연장에서 실무를 뛰기엔 정말 부족한 상황이었어요. 공연장은 늘 라이브라서 실수도 절대 용납이 안 되었구요. 3달 정도 버티다가 나오게 됐어요. 그때 약간 방황하게 됐어요. 이렇게까지 공들여서 준비한 일이었는데, 이제 나는 뭘 해야 하나 싶었죠.

대학을 스스로 관둔 것, 일을 그만둔 것에 대한 주변의 시선이 곱지 않았어요. 우리 사회에 대학 타이틀이 얼마나 중요한지 뼈저리게 느낀 시간이었죠. 예컨대 “대학교 2학년이에요”라고 말하면 모든 게 설명이 되지만, 학교를 다니지 않으면서 미래를 준비하는 것에 대해서는 선입견을 가지고 보시더라고요. 이걸 설명해야 만 하는 시간들이 저에겐 굉장히 괴로웠어요. 제 나름대로는 음향을 공부하며 축제 등 현장에서 자원봉사를 하기도 하고 열심히 활동했는데 말이에요.

이렇게 자존감이 무너지고 있던 중에, 제가 음향 자원봉사를 하던 곳에서 뉴딜일자리 사업으로 인력 채용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여기에 지원하게 됐어요. 감사하게도 합격했고, 그때부터 쭉 문화예술 분야에서 아티스트 그룹을 지원하는 일을 해왔습니다.

‘음향’을 공부하러 아카데미에 다니던 시절, 매일매일의 수업 내용을 빼곡히 정리해 둔 스크랩북.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사진 제공: 정해민)

Q. 주로 어떤 일들을 하셨는지요?

시민청에서 운영하는 버스킹 무대인 ‘활력콘서트’(링크)와 ‘토요일엔 청이 좋아’(링크)라는 행사를 지원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그 이후로 문화재단과 문화센터 등에서 일을 진행하다가, 더함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Q. 문화예술과 관련한 일들을 하시다가, 주거의제와 관련된 현재의 일로 지원하신 계기가 있으실까요?

문화예술 쪽의 TO가 워낙 많지 않기도 하고요. 좀 더 영역을 넓힐 필요가 있겠다 싶었어요. 형태는 비슷한데 소재는 다른 일들에 어떤 것이 있을까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기본적으로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고요, 여러 사람이 머리를 맞대 함께 만들어 가는 사업들을 좋아했어요. 그래서 사람들이 계속 모일 수 있는 공간이나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영역으로 알아보기 시작했고요. ‘청신호 명동’ 공간의 운영 매니저를 구인한다는 공고를 보고 지원했습니다.

문화재단에서 일을 할 때, 정책이 새로 생기면서 만들어진 팀에 들어갔었는데요. 정책과 맞닿아 있는 느낌이 굉장히 좋았어요.

Q. ‘정책과 맞닿아 있는 느낌’이라고 하셨는데, 좀 더 자세히 들어보고 싶어요.

보통 일을 진행할 때 실무자가 아이디어를 가지고 와서, 팀장, 본부장 이런 식으로 컨펌을 받으며 올라가는 구조이잖아요. 새로 생긴 정책의 경우, 사례 자체가 많이 없기도 하고, 담당자들이 처음부터 만들어 가야 하는 것들이 많아요. 그러다 보니 실무자들도 늘 중요한 의사결정을 하는, 규모 있는 회의에 참석할 수가 있었는데요. 그 회의에서 나온 의견들을 가지고 한 걸음씩 나아가는 그런 과정들에서 재미를 느꼈어요.

Q. 딱 세팅된 틀에 들어가서 부품처럼 정해진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같이 세팅하면서 하는 게 재미있었다는 말씀이신 거죠?

네, 힘들기도 엄청 힘들지만, 재미있었어요. 제 경우에 ‘정책’이라는 것에 대해 별 관심이 없다가, 일을 통해서 관심을 갖게 된 편인데요. 그러면서 생긴 목표 하나가, 내가 기획하고 이름 지은 사업을 하나 만들어 보고 싶다는 것이에요. 언젠가는 꼭 이뤄보고 싶습니다.

시민청에서 열리는 각종 문화행사의 실무자로 활약했던(!) 모습. (사진 제공: 정해민)

# 좋은 문화를 만들어 가는 사람들,
소소한 에피소드들

Q. 더함에 지원을 하기 위해 이것저것 많이 찾아보셨을 텐데요. 가장 인상 깊은 포인트가 있으셨나요?

모델하우스를 다시금 커뮤니티하우스 콘셉트로 활용한 사업이 가장 인상적이었어요. 획기적인 시도라고 생각했고, 마르쉐와 같은 큰 행사뿐 아니라, 아기자기한 프로그램들이 그 안에서 진행되었다는 점도 좋아 보였어요. 공간 운영에 대한 이해나 의지가 있는 회사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Q. 더함에 들어오길 잘했다고 생각되는 순간은요?

가장 가까이에서 함께하는 팀원들에게서 만족감을 얻는 것 같아요. 마케팅홍보를 담당하시는 김은지 매니저님은 ‘에너지 마스터’인데요. 늘 에너지가 넘쳐서, 그 모습에 힘 얻는 날이 많습니다. ‘자기가 실행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을 단단하게 추진하는 사람’이에요. 멋있죠.

오슬기 매니저님은 ‘묵직하게 중심을 잡아 주는 사람’이에요(링크). 생각을 건강하게 하고, 한쪽에 쏠린 생각을 말하지 않고, 모든 사람들을 존중하며 대하는데요. 그래서인지 사소한 대화들에서도 배울 점이 많아요. 그리고 자신이 가진 생각을 남이 궁금하게끔 하는 기획력이 있어요.

유안나 팀장님은 팀의 수호자 같은 느낌이에요(링크). 실무자인 매니저들이 본인의 색깔을 잘 살리며, 잘 놀 수 있게끔 판을 마련해 주고 계시죠. ‘같이 얘기해서 만들어 가자’는 방향성을 가지고 계시기도 하고, 외부와의 소통들을 전담하면서 어려운 점들을 헤쳐 주시는 터라 정말 든든합니다.

팀의 분위기가 전반적으로 각자의 스타일을 살려 주는 방식으로 가려 하는 편인데요. 서로 신뢰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 같아요. 이견이나 보완해야 할 의견이 있다면 대부분 수긍하고 반영하려 하는 기조가 있어요.

카페 매니저님들도 빠질 수 없는데요. 제가 출근할 때 거의 9시 정각에 맞춰 오는데, 제가 문 열고 들어오면 ‘아, 이제 9시구나’ 하신대요. 웃기죠. 늘 환하게 웃어주시고, 반겨주셔서 좋아요. 청신호 명동에 입장하고 퇴장하는 그 순간엔 늘 기분이 좋아져요.

Q. 어려운 점은 없으신가요?

아직까지는 부동산, 주거에 대한 이해가 깊지 않은 게 가장 어려운 점이에요. 최근에 부동산사업개발실의 이윤형 매니저님(링크)이 ‘청년주거 의제를 주제로 사내 스터디 모임을 만들자’는 제안을 주셨는데요. 조만간 준비가 되면 다른 분들께도 제안을 드려 보고 싶어요.

Q. 얼마 전 만들어진 <조직문화 TF>에 매니저 중에서는 맨 첫 번째로 자원을 해주셨는데요. 정말 멋있었어요. 이 조직문화 TF 일원으로 활동하면서 느끼신 점이 있으신가요?

현재 10명 가까운 멤버가 조직문화 TF에 소속되어 활동하고 있는데요. 다들 현업에 많이 바쁠 텐데 귀찮아 하는 사람이 없는 게 신기해요. 무언가 하고 싶어 하고, 해내고 싶어 하는 에너지가 느껴져요.

또 이 안에서는 직급을 떠나 각자에게 주어진 일들을 성심껏 하고 있는데요. 예컨대 팀을 추첨해야 하는 추첨표를 만들고 자르는 일들에 실장님들께서 자원하시기도 하고요.

Q. 매니저님이 생각하는 좋은 조직문화란 무엇인가요?

뭐라고 정의하기는 힘들지만, 개개인에게 ‘이 회사는 다닐 만하구나’라는 생각이 들게끔 하는 어떤 것 아닐까요? 어떤 문구로 정리된 메시지보다도, 이 안에서 벌어지는 소소한 에피소드들이 문화를 만들어 가는 것 같아요.

Q. 방금 그 말씀에 저도 공감해요. 그런 의미에서 최근에 회사 내에서 슬기 매니저님과 함께 오이와 토마토를 기르시고, 또 이 성장 스토리를 기록해서 공유해 주셨던 게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사실 화분에 처음 씨를 뿌렸을 때에는 오이와 토마토가 이렇게 커질 줄 몰랐어요. 그 오이로 샐러드를 만들어 같이 나눌 수 있을 거라고는 더더욱 상상조차 못했죠. 막판에는 손바닥 반 정도 크기이던 잎이 주말이 지나면 손바닥 크기로 자라 있는 것을 보며 소름이 돋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제 키를 훌쩍 넘길 정도로 자랐어요.

오이와 토마토가 자라는 걸 보며 느끼는 성취감도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들이 마음 기댈 곳이 되어 주었어요. 이 행복을 구성원들과 나누고 싶어서 주기적으로 ‘성장기록’을 공유했고, 다들 흥미를 갖고 반응을 보여 주셔서 좋았습니다.

물을 주고 성장을 담당했던 오슬기 매니저님이 ‘명작’(明作, 서울 명동 한복판에서 작물 기르기)이라는 이름의 동아리를 제안 주셨고, 10명 가까운 구성원들이 각자 두어 종류의 작물을 키워내고 있습니다. 베베(블루베리), 추추(고추), 질질(바질), 토토(토란) 등 이름도 붙여서 쉬는 시간마다 들여다보러 오는데,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절로 흐뭇한 미소가 지어져요.

오이의 성장과 기록을 담당했던 매니저들의 모습. 좌측이 정해민 매니저, 우측이 오슬기 매니저이다.

믿기 어렵겠지만, 마트에서 판매하는 씨앗에서 길러낸 오이의 실물이다. 지난 6월 말 두 개의 오이를 수확하는 기쁨을 만끽했고, 최근에도 추가로 두 개의 오이를 수확했다.

# ‘해볼까’ 하는 걸 가벼운 마음으로 해보는 일상

Q. 퇴근 후나 주말에는 주로 무얼 하며 시간을 보내시나요?

상반기에 매주 수요일마다 1시간 반 정도씩 뮤지컬 수업을 들었어요. 어렸을 때부터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했고, 한때는 가수를 꿈꾸었던 터라, 취미로라도 계속 해보고 싶었어요. 뮤지컬 중 유명한 한 씬을 연습하기도 하고, 부르고 싶은 곡을 배우기도 했습니다.

Q. 매니저님에게 영감과 아이디어를 주는 콘텐츠가 있을까요?

예전에는 <무한도전>을 본방사수 하면서 챙겨 봤어요. <대탈출>, <크라임씬> 등 낯선 상황들, 문제 상황들에 던져지고 해결해 나가는 프로그램들을 좋아하는 편이에요.

지금은 <놀면 뭐하니?>를 즐겨 보는데요, ‘해볼까?’ 하는 걸 그냥 해버리는 포인트에 반해 버렸어요. 카메라를 여러 사람들에게 돌려 릴레이 형식으로 만들어 낸 것도 그렇고요. 트로트를 해볼까 한 데서 ‘유산슬’이라는 매력적인 캐릭터를 탄생시키고, 여름노래를 만들어 볼까 한 데서 지금의 ‘싹쓰리’를 탄생시킨 것도 그렇고요.

Q. 매니저님도 이런 기조로 살아가길 원하시는 건가요?

네, 낯선 것에 두려움을 갖기보다는 무언가 해보고 싶단 생각이 들면 한 번쯤은 무턱대고 해보려고 하고 있어요.

Q. 자신을 표현하는 한 단어나 한 문장?

주변에 오픈해서 얘기하지는 않지만, 혼자 생각하고 있는 좌우명은 있어요. “나니까 할 수 있다.”

어렸을 때부터 자존감이 무너지는 일들이 많았지만, 결과적으로 지금까지는 잘 회복을 할 수 있었어요. 그런 순간들을 거치면서 “나는 할 수 있는 사람이다”라는 자신감을 다시 가질 수 있었죠. ‘나는 할 수 있는 사람이다. 해낼 수 있는 사람이다’라는 뜻으로 마음에 새기고 있습니다. 앞으로 어려운 일들이 생길 때마다 이 말을 계속 되새기면, 언젠가는 할 수 있겠죠?

Q. 커리어적으로 이루고 싶은 목표?

뮤지션들을 지원하는 일을 하면서, 공연을 잘할 수 있도록 장비 하나라도 더 챙겨주는 실무자로 일을 해왔는데요. 이런 일들에 많은 보람을 느꼈어요. 지금도 이 공간을 이용하는 청년단체들을 지원하는 일을 맡고 있는데, 이분들이 공간과 자원을 잘 사용하실 수 있게 잘 서포트하고 싶습니다. 조금 더 욕심을 내자면 ‘기억에 남는 서포터’가 되고 싶어요.

해민 매니저의 바람은 누군가에게 ‘기억에 남는 서포터’가 되는 것이다. (사진 제공: 정해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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