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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일빌딩245: 공간은 기억을 갖는다

from. 김은지

[from더함] 더함피플의 생각, 일상, 특별한 순간들을 나눕니다. 서로의 이야기에 대한 이해와 공감으로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더불어 소소한 이야기들이 모여 더욱 풍성해질 더함을 기대해봅니다.

참여 중인 모임에서 ‘일’ 혹은 ‘공간’을 주제로 자신을 이야기하는 시간이 있었다. 나는 지금 운영 중인 기쁨곡간*과 곡간지기로서 나를 있게 한, 영감을 주는 공간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내 이야기의 시작은 ‘전일빌딩’이었다.

* 창신동에 위치한 커뮤니티 공간. 기쁨을 보관하고 흘려보낸다(링크).

“사람들이 저에게 자주 물어요. 어쩜 그렇게 실행력이 좋고 열정적이냐고. 저는 웃으며 대답하죠. 광주 사람이라 그래요. 좋은 DNA를 받았거든요.

나에게 영감을 준 전일빌딩이 몇 년 만에 새 모습을 갖추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광주에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지어지며 주차장으로 쓰일 뻔했던 이 공간을 시민들의 힘으로 지킬 수 있었다. 그리고 안전 보수와 리모델링을 거쳐, 광주 5.18 민주화 운동을 기억하는 공간, 복합문화공간으로 바뀌었다는 희소식을 접할 수 있었다. 기쁜 소식에 바삐 발을 옮겨 광주로 내려갔다. 5.18 민주화 운동 40주년을 맞이하는 5월이었다.

/ 목격자 1. 전일빌딩

한동안 방치되어 있던 전일빌딩. 내가 좋아하던 문구 ‘LOVE LIFE’ (사진 제공: 김은지)

전일빌딩은 전남도청과 분수대 광장 바로 옆에 위치한, 호남 언론의 중심지였다. 5.18 당시 이 건물엔 전남일보(광주일보의 전신)의 편집국이 있었고, 맞은편 YWCA 건물엔 <투사회보>팀과 시민군이 있었다.

5.18 민주화 운동 당시 헬기 사격을 받은 전일빌딩의 흔적. 총 자국 위에 붉은 표식이 있다. (사진 제공: 김은지)

안전상의 이유 등으로 철거가 논의되던 전일빌딩에서 5.18 민주화 운동 당시 헬기 사격을 받은 흔적들이 발견되었다. 광주의 역사가 깃든 이 건물을 지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고, 전일빌딩은 효율성과 자본의 논리를 거스르고 지켜질 수 있었다. 그리고 건물에서 발견된 총탄 자국 245개의 숫자를 따 ‘전일빌딩245’라는 새로운 이름을 갖게 되었다.

‘전일빌딩245’ 1층의 내부 (사진 제공: 김은지)

이 건물의 1층은 뜨거운 역사 한가운데에 있던 전일빌딩의 자기소개로 시작된다.

전일빌딩은 245개의 총탄 자국을 간직한 5.18 민주화 운동의 목격자입니다. 계엄군의 잔인성을 가장 높은 곳에서 지켜보며 시민군의 피난처가 되어 주었으며, 80년 5월의 함성과 절규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2~3층에는 디지털 정보 도서관 형태의 시민 공간이, 5~7층에는 다양한 창작기업들이 입주한 ‘광주콘텐츠 허브’가 있었다. 그리고 9~10층에서는 5.18 당시의 총탄 흔적과 관련한 전시물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전일빌딩245 옥상정원 (사진 제공: 김은지)

옥상을 보고 내려와 10층, 9층으로 이동하라는 친절한 해설사 선생님의 말을 따라 옥상으로 먼저 올라갔다. 사직공원 전망대부터 조선대학교, 무등산 그리고 구 전남도청과 상무관, 분수대 광장이 한눈에 보였다. 광주에 또 이런 광경이 있을까 싶은 곳이었다.

빌딩 내에 전시되어 있는 <검은 하늘 그날>(정영창 작가 作) (사진 제공: 김은지)

옥상에서 9층을 내려가는 계단을 지날 때에는 헬기의 사격 준비 소리가 들렸다. 전일빌딩이라는 애통한 목격자를 맞으러 가는 실감 나는 연출이자, 공감을 촉구하는 소리처럼 느껴졌다. 이 소리를 듣는 이들이 당시의 긴박한 상황에 좀 더 공감하기를 바라는 기획자의 의도였을까. 5.18 민주화 운동, 헬기와 장갑차 그리고 실탄이 시민들을 향했던 그날의 기억을 전일빌딩은 생생히 기억하고 있는 듯했다.

전일빌딩 245 (사진출처: 김은지)

5.18 민주화 운동 당시 헬기 사격에 관한 영상/조형물,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의 말 (사진 제공: 김은지)

전일빌딩245가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된다.” (사진 제공: 김은지)

지난 2020년 4월 전두환이 고(故) 조비오 신부에 대한 사자명예훼손 혐의 재판을 위해 광주에 왔다. 그는 여전히 헬기를 통한 사격이 없었다고 했고, 그의 회고록에선 조비오 신부님의 증언을 ‘파렴치한 거짓말’로 만들어 버렸다.

세상엔 아직도 규명되어야 할 ‘사실’들이 많다. 제대로 된 ‘사실’을 밝혀 내지 않고, 그 ‘사실’을 기억하지 않고는 건강한 현재를 살아갈 수 없다. 여전히 찾아지지 않는 저 땅 속 아래, 바다 깊은 곳엔 우리의 미래가 침잠해 있다.

전일빌딩245. 가짜뉴스들과 그에 대한 진실들 (사진 제공: 김은지)

전일빌딩 10층 전시관은 여전히 우리의 아픈 곳을 흔드는 가짜뉴스들과, 그에 대한 진실을 보여 주고 있다. 빌딩에서 사용되던 옛 문을 그대로 살려 문이 달린 박스들을 만들었고, 그 문을 열면 문 밖에 쓰여진 가짜뉴스들에 대한 진실이 드러난다.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계엄령을 철폐하라는 학생들과 시민의 목소리가 ‘빨갱이’, ‘폭도’, ‘괴뢰집단’으로 둔갑한 것은 TV, 신문, 라디오, 전화 등 모든 통신망의 합작품이었다. 이는 순식간이었으며, 어쩌면 여전한 일들이다.

5.18 민주화 운동의 기록 (사진 제공: 김은지)

10층을 따라 9층으로 내려와 그날의 기록들을 더욱 찬찬히 살폈다. 어렸을 때부터 무심코 다니던 수많은 곳들은 우리가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곳들이었다. 사진 위, 누가 놓고 갔을까. 하얀 국화 세 송이가 놓여 있었다. 그 누구도 전시물에 해가 간다고 치우지 않았다.

/ 목격자 2. 5.18 민주화 운동 당시의 고3, 59세의 어머니

나의 어머니는 광주에서 문화해설사를 하고 계신다. 몇 해 전 5.18 민주교육지도사 자격증을 따셨고, 이번에 새로 개관하는 전일빌딩의 해설사에도 지원하셨다고 들었다.

종종 부모님이나 친척들에게 당시의 상황을 물었다. 언젠가는 내 광주, 우리 광주에 대해 짤막한 글이라도 써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전일빌딩을 다녀오고, 40주년을 맞이해서야 그날이 오늘이어야 함을 느꼈다.

탁월한 해설사인 어머니에게 물었다.

“엄마, 엄마가 느꼈던 그때는 어땠어? 해설사로서 그 당시를 설명할 때 소개해주고 싶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어?” 어머니는 기다렸단 듯 이야기를 쏟아내셨다.

엄마는 그때 고3이었어. 학교를 마치고 오는데 사람들이 끌려가고 총을 든 군인들이 돌아다녀서 너무 무서워서 집으로 와보니, 할머니가 이불로 문들을 막고 계셨지. 총알이 들어올까 봐. 그 시민군으로 활동하던 A삼촌도 죽을까 봐 무서워서 총을 들고 집으로 왔지 뭐야.

(중략)

엄마가 너에게 이야기해주고 싶은 사람은 정말 많아. 당시 정말 많은 사람들이 헌혈을 했는데 그중 박금희라는 한 고등학생이 헌혈을 하고 돌아가는 바로 그 길에 총을 맞았대. 그래서 조금 전 자신이 피를 빼주었던 병원으로 실려 왔는데, 당시 간호사의 증언은 그 헌혈을 하지 않았다면 출혈이 덜해 살았을 거라 하더라고.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에 ‘동호’로 나오는 인물인 문재학 학생의 이야기도 있지. 친구를 찾으러 왔다가 상무관에서 시민들의 시체 닦고 번호를 붙이는 일을 하게 되었고, 그러다 ‘내일 돌아가겠다’는 어머니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된 어느 소년의 이야기.

아 그리고 ‘임을 위한 행진곡’이란 노래 알지? 그 노래의 주인공인 윤상원 씨의 이야기도 꼭 알아야 하지. 서울에서 은행에 다니다가 광주의 소식을 듣고 내려와 민주위원회의 대변인이 되고 시민군의 주요 인사로 활동했지. 그는 외신 기자들도 왔던 마지막 기자회견 때 이렇게 이야기했다고 해. ‘우리는 질 것이지만, 역사는 우리를 승자로 기억할 것이다.’ 이때 왔던 기자들이 기억하는 윤상원 열사의 마지막은 이렇대. 자신의 끝을 준비하는 이의 표정이 참으로 평화로웠다고 해. 윤상원 열사는 도청 함락 이후 27일 새벽에 돌아가셨어. ‘임을 위한 행진곡’은 후에 주변인들이 5.18 민주화 운동 전에 야학 운동을 하다 연탄가스 중독으로 돌아가신 박기순 씨와 윤상원 씨의 영혼결혼식에 헌정된 곡이지. 그후 아시아의 많은 민주화 운동들에서 이 노래가 울려 퍼졌어.

(중략)

5.18 민주화 운동을 이야기하며 엄마가 꼭 강조하고 싶은 것은 ‘공동체’야. 계엄군과 시민군의 접전, 고립, 총성이 난무하던 그때 광주 내부적으로는 ‘대동세상’을 이루었어. 금(金)방이 털리지 않았고, 서로에게 피를 나누었고, 어머니들은 주먹밥을 날랐지. 그래서 지금도 광주의 7味 중 하나로 주먹밥이 들어가는 거야.

(중략)

이 모든 일들을 꽤 오래도록 말할 수 없었어. 고통 속에 침묵해야만 했지. 그들이 재판받기 전까지 이 이야기를 말하는 것은 간첩 신고를 받을 만한 일이었거든.

엄마는 해설할 때 외국인들에게 이렇게 말해.

“They are not victim but victor.”

우리의 역사는 헛되지 않았어. 결국 민주화를 이겨냈고 승리했으니까.

/ 옳은 것을 위한 믿음

전일빌딩과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생각해야 했으나 잊었던 것들이 떠올랐다. 여전히 이 땅엔 불의와 폭력이 난무하다. 영화 속에서만 있을 법한 일들이 현실에도 일어난다. 아니, 현실을 기반으로 콘텐츠를 만드는 것이니 콘텐츠의 자극성이 심해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굳이 굳이 희망을 노래하라는 그 상투적인 말로 글을 마무리하고 싶다. ‘옳음’에 대한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선을 향해 가는 나에겐 절망과 두려움과 증오가 가득할지라도 선을 향해 가는 우리는 결국 승리의 노래를 부를 테니까. 나는 그렇게 믿는다. 전일빌딩이 가진 삶을 향한 뜨거운 기억은 시민들에게 오늘도 희망을 안겨 줄 것이다.

5.18을 주제로 전시 중인 아시아 문화전당(ACC) 벽면에는 희망을 노래하는 임철우 시인의 ‘봄날’이 새겨 있다. (사진 제공: 김은지)

보다 자세한 5.18 민주화 운동의 타임라인은 아래에서.

http://www.518.org/sub.php?PID=010102

from. 김은지

‘청신호 명동’을 운영하는 지기이자 기쁨곡간의 곡간지기
‘기쁨이 넘치는 창조적 삶’을 살아가고 있는 기쁨주의자

※ 이 글은 김은지 매니저 개인 브런치에도 실린 내용입니다.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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