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ight

방구석 여행: 우리 사는 이야기

“요즘 어때?”
“잘 살고 있어?”

일상적으로 묻는 안부에도 쉽게 답하기 어려운 날들이 있죠. 새삼스레 잘 산다는 말이 어색하고, 그 말에 무게감이 느껴지기까지 합니다. 잘 산다는게 뭔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가 한숨으로 끝나는 날들이 누구에게나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세상에는 길이 하나 밖에 없다고, 정답은 정해져 있다는 압박감을 느낄 때면 여행지에서 만난 수많은 인생들을 생각한다. (중략) 결국 그가 타인의 삶 속으로 여행을 떠나면서 발견한 것은 바로 자신의 삶이었던 셈이다.
-한수희, 《우리는 나선으로 걷는다》 중에서

‘물리적 거리두기’로 여행을 떠나기 힘들어진 지금, 다양한 주거 이야기, 사는 이야기로의 여행을 제안해 봅니다. 낯선 여행지에서 닮은 점과 다른 점을 찾으면서 재미를 느끼듯, 낯선 삶 속에도 나와 어딘가 닮은 점과 다른 점 들을 찾는 재미가 있지 않을까요?

여러분은 누구와 살고 있나요? 나를 돌보는 나만의 방법이 있나요? 시시콜콜한 사는 이야기들 속에서 집의 의미, 잘 산다는 것의 의미를 저마다 찾아 볼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오늘의 이야기 – 20대, 대학생
한아_24세, 자취 4년차, 원룸 거주러
두리_26세, 자취 3년차, 셰어하우스 거주러
세나_25세, 본가살이, 반려동물과 함께 거주

#머물며 사는 곳

한아_ 저는 1인가구로, 원룸에 거주 중입니다. 기숙사에서 나오면서 하숙과 셰어하우스, 여러 선택지가 있었지만 가격도 크게 차이나지 않고, 혼자만의 공간도 보장된다는 장점 때문에 자취를 선택하게 되었어요. 자취 초반에는 너무 외로워서 단기 룸메이트도 몇 번 구했는데요. 조금 외로워도 혼자 사는 게 편하더라고요.

두리_ 저는 현재 셰어하우스에 살고 있습니다. 2학년까지는 본가에 살며 지하철을 타고 학교를 다녔어요. 통학에 왕복 3시간 이상 걸렸는데, 매일같이 ‘지옥철’을 경험하며 인류애를 잃어갔어요. 학년이 올라가면서 학교에서 밤새워 과제하거나 공부하는 일도 많아졌는데, 이럴 바에는 아르바이트를 조금 늘려 학교 앞에서 사는 것이 낫겠다고 판단해 자취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하숙에서 시작해서 현재는 셰어하우스에 정착했습니다. 셰어하우스를 선택한 가장 큰 이유는 아무래도 가격이에요. 부모님의 지원 없이 자취를 하게 된 터라, 보증금이나 월세 부담이 적은 곳을 찾을 수밖에 없었어요. 보증금이 저렴하고(보통 월세의 2배이거나 100만 원 안팎입니다), 월세가 30만 원대로 그럭저럭 쾌적한 가정집 환경에서 생활할 수 있어요. 하숙과 다르게 거실과 주방이 있다는 점도 좋고요. 별것 아닌 것 같은데 거실이 있고 없고가 차이가 참 크더라고요. 여러 명이 함께 살기 때문에 혼자 사는 것보다는 조금 더 안전하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거실과 주방을 메이트들과 공유하는 셰어하우스. (사진제공: 두리)

#함께 사는 존재

사람들도 저마다 다른 온도와 습도의 기후대와 문화를 품은 다른 나라 같아서, 누군가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일은 외국을 여행하는 것처럼 흥미로운 경험을 준다.
– 황선우, ‘타인이라는 외국’,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황선우, 김하나 공저) 중에서

한아_ 지금 함께 사는 유일한 식구는 식물들입니다. 칼랑코예, 장미허브, 그리고 이름 모를 식물 이렇게 세 종류를 키우고 있어요. 강아지나 고양이 같은 반려동물처럼 활동성이 큰 아이들은 아니지만 그래도 누군가를 돌보면서 살게 되니까 더 힘이 나더라고요. 아침마다 식물들에게 물주고 햇볕 비춰주려고 일찍 일어나게 되니까 생활습관도 좋아졌어요.

자취방에 활기를 더해주는 반려식물들. 반려식물들 덕분에 더 부지런히 생활하게 되었다고 한다. (사진제공: 한아)

두리_ 지금 같이 살고 있는 메이트들은 저와 달리 직장인들이에요. 본가가 지역인데 서울에 취직해 살게 된 케이스가 많아요. 직업이 모두 다르다 보니 아침에 일어나는 시각, 나가는 시각, 돌아오는 시각, 씻는 시각이 모두 달라서 마주치는 일이 사실 거의 없습니다. 그래도 가끔 음식이나 화장품이 남으면 소소하게 나눠주며 지내요.

이전에 같이 살던 메이트들과 정말 친했는데요. 성격이 서로 잘 맞아서 밤마다 끝없는 수다 파티가 벌어졌어요.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은 연애상담을 하고… 같은 대학 학생과는 시험기간마다 거실에서 밤새워 공부하다가 테이블에서 잠들었던 적도 있네요.

세나_ 저는 부모님과 남동생 그리고 귀여운 반려견 두 마리(뽀미, 봉구)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요즘은 남동생이 학교 때문에 지역에 내려가 있어서 집에 거의 없습니다. 뽀미와 봉구는 사실 부모님께서 충동적으로 데리고 오셔서 가족이 된 케이스예요. 이제는 사실상 저의 동생들이고, 거의 제 인생의 반을 함께 살아온 저의 소중한 가족입니다.

부모님께서 충동적으로 데려온 뽀미와 봉구는 어느새 인생의 반을 함께 살아온 소중한 가족이 되었다. (사진제공: 세나)

#소소하지만 기억하고픈 순간들

한아_ 1인가구로 살면서 홈파티를 했던 순간들이 제일 기억에 남아요. 집에 다른 식구들이 있으면 친구를 초대할 때 동의도 구해야 하고 복잡하잖아요. 그런데 저는 혼자 사니까 제가 파티를 열고 싶을 때 언제든지 열 수 있다는 점이 큰 장점이에요. 작년 연말에 홈파티를 크게 두 번 했었는데, 제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불러서 맛있는 요리를 직접 해서 실컷 먹이는 게 정말 기쁘고 행복했어요.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마음껏 웃고 떠들던 좋은 추억이 있네요.

친구들과 함께한 연말 홈파티. 조용한 집이 간만에 웃음소리와 수다소리로 가득했다고 한다. (사진제공: 한아)

두리_ 셰어하우스에 있는 TV가 넷플릭스 지원이 되어서, 메이트들과 함께 칵테일이나 맥주를 마시며 영화와 드라마를 봐요. 지난번엔 강동원 출연 영화를 도장 깨듯 봤는데, <늑대의 유혹>이란 영화를 보며 오글거림에 몸서리쳤던 기억이 나네요. (웃음)

세나_ 저희 뽀미는 제가 슬픈걸 귀신 같이 알아요. 저번에 한 번은 제가 속상한 일이 있어서 방에서 혼자 울고 있었는데, 쪼르르 달려와서는 제 눈물을 핥아주더라고요. 그리곤 제가 울음을 멈출 때까지 같이 기다려줬어요. 가끔은 강아지가 사람보다 더 큰 위로를 주는 것 같아요.

#혼자든 함께든,
우리는 때때로 천국과 지옥을 오간다

한아_ 혼자 사는 것의 가장 큰 장점이라 하면, 혼자만의 공간과 시간을 온전히 보장받을 수 있다는 거죠. 제 경우에는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 에너지를 많이 들이는 편인 것 같아요. 같이 살 때는 몰랐는데 온전히 혼자 살게 되니까 제가 작은 것에도 에너지를 쓰고 있었다는 걸 새삼 느꼈어요. 저처럼 관계에 에너지를 많이 쏟는 편이라면 혼자 사는 것도 추천하고 싶네요.

하지만 처음 자취를 시작할 때는 외로움이 좀 크게 다가올 수도 있어요. 항상 관계 속에서 살다 보니까 혼자 시간을 보내는 것에 익숙하지 않아 뭘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외로움만 커져가는 거죠.

가끔 누군가가 같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이 들긴 해요. 달라진 점은 그렇다고 혼자만의 공간과 시간 속으로 다른 이를 끌어들이려 하지는 않는다는 거예요. 혼자만의 것은 그대로 두고, 제가 사람들을 찾아서 밖으로 나가게 되었어요. 그 편이 상대에게도 저에게도 좋다는 걸 깨달았거든요.

두리_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무엇보다 보증금과 월세가 저렴하고요. 거실과 주방을 공유할 수 있고, 생필품을 나눌 수 있다는 점도 좋아요. 여성들인 경우 혼자 사는 것보다는 안전하고, 합이 잘 맞으면 정말 재밌는 일상을 나눌 수 있을 거예요.

물론 셰어하우스 생활에서 지옥을 맛볼 수도 있습니다. 메이트 중 한 명이라도 배려심이 부족하거나 지저분하면 매일이 전쟁이죠. 빨랫감이 서로 섞이거나 냉장고에 보관해 둔 개인음식이 뒤섞이기도 하고요. 전기세와 수도세를 1/n 하는데, 전기와 수도를 적게 쓰는 경우 이런 것이 불공평하게 느껴질 수 있겠죠.

#집 = 케렌시아, 회복과 모색의 장소

케렌시아는 투우장의 소가 마지막 일전을 앞두고 홀로 잠시 숨을 고를 수 있는 자기만의 공간을 의미한다. 스페인어 케렌시아(querencia)는 ‘바라다’라는 뜻의 동사 ‘querer'(케레르)에서 나왔다. 피난처, 안식처, 귀소본능이라는 의미다. 투우가 진행되는 동안 소는 위협을 피할 수 있다고 여겨지는 경기장의 특정 부분을 머릿속에 표시해 둔다. 싸움소는 그곳을 자기 스스로 케렌시아로 삼는다. 그곳에서 숨을 고르며 마지막 모든 힘을 다해 에너지를 모은다. 케렌시아는 회복과 모색의 장소다.
– 《트렌드코리아 2018》 중에서

한아_ 집은 저에게 생산적이지 않아도 괜찮은 공간이에요. 잠을 깼지만 여전히 침대 속에서 뒹굴거려도, 친구들과 술잔을 기울이며 시덥지 않은 이야기만을 나눠도, 해야 할 일을 책상 위에 쌓아둔 채 휴대폰만 들여다봐도 괜찮은 공간이죠.

많은 현대인처럼 저도 매 순간 생산적인 일을 해야 한다는 강박에 쌓여 사는 편이에요. 그래서 요새는 집을 완전한 휴식의 공간으로 남겨두려 의식적으로 노력해요. 공부나 일은 되도록 밖에서 처리하고, 집에서는 충분히 쉬거나 취미활동을 하려고 합니다. 물론 코로나 사태로 혼란스러운 현재 상황에서는 집에서 공부나 일까지 처리할 수밖에 없지만요.

두리_ <트렌드코리아>에서 많은 현대인들에게 ‘케렌시아’라는 재충전의 공간이 필요하다고 하던데요. 저에게는 집이 그런 ‘케렌시아’ 같아요.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에너지를 온전히 충전할 수 있는 공간요.

세나_ 저에게 집은 자유이자 인생의 목표라고 생각해요. 집 바깥을 나가면 모든 것에 규칙이 있는 반면, 집에 들어온 이상 바깥의 규칙에서 자유로워지잖아요. 아직 제대로 사회생활을 시작해 본 적은 없지만, 바깥에서 힘들고 지쳤던 날은 집에 온 것만으로도 속이 풀리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요. 그런 의미에서 집은 저에게 한없이 자유롭고 편안한 공간이에요.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집은 저에게 인생의 목표인 것 같아요. ‘내 집 마련’을 위해 하루하루 바쁜 삶을 살아가는 다른 사람들처럼요. 누군가는 너무 세속적이라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웃음), 어쨌거나 저에게는 큰 과업이자 인생의 목표처럼 느껴져요.

#공간에 애정을 더하는 물건들

한아_ 이 질문 정말 어려워요. 솔직히 저는 집에서 그렇게 만족을 느낄 만한 물건이 없어요. 아무래도 오래 머물 집이 아닌, 자취방이다 보니 그렇게까지 마음을 담아 공간을 채우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물건까진 없는데, 청소를 열심히 하면 뭔가 ‘내 공간’ 같은 느낌이 들어서 청소를 열심히 하는건 있네요.

두리_ 전기장판이요. 이거야말로 가심비(가격 대비 마음의 만족을 추구하는 소비 형태)네요. 2만원 주고 샀는데, 겨우내 이걸로 버텼어요. 몸도 마음도 후끈해지는 물건입니다.

세나_ 어피치 블루투스 스피커요. 음악을 듣는 게 저의 행복한 일상 중 하나예요. 제가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있으면 잠을 자는 게 아깝다는 생각도 많이 들어요. 한 번은 제가 좋아하는 가수의 신곡 한 곡만 반복해서 새벽 4시까지 듣다가 잠든 적도 있었답니다. 그냥 핸드폰으로 듣는거랑, 스피커로 듣는 거랑은 차원이 달라요. 제가 만약 자취를 하게 된다면, 꼭 사고 싶은 게 고가의 블루투스 스피커나 턴테이블이랍니다. 음악은 제 공간에 애정을 더하는 중요한 요소예요.

#나를 돌보는 작은 행동

한아_ 정말 사소하긴 한데, 규칙적으로 생활하는거요. 비슷한 시간에 일어나서 침대를 정리하고, 바닥을 쓸고, 아침을 먹고, 운동을 하고… 이런 생활 루틴을 지키려고 해요. 어느날 문득 몸이 건강하려면 정신이 건강해야하고, 정신이 건강하려면 몸이 건강해야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내가 아니면 나를 지켜줄 사람이 없다는 것도 깨닫게 됐고요. 그래서 시작하게 됐어요.

두리_ 매일매일 명상을 해요. 가족들이랑 함께 살 때는 저녁마다 하루를 공유하고 정리할 시간이 있었는데, 독립한 이후에는 그럴 사람이 없어졌어요. 생각보다 하우스 메이트들이랑 대화할 일이 많지 않거든요. 하루를 건강하게 마무리하고 싶어서 시작했는데, 이제는 습관으로 자리잡았네요.

세나_ 매운 떡볶이를 먹어요. 매우면 정신이 없어서 평소에 갖고 있던 복잡한 생각이나 걱정들을 떠올릴 겨를이 없거든요. 주기적으로 떡볶이를 먹으면서 스트레스를 날려버립니다. 잠깐 일본으로 교환학생 갔을 때도 떡볶이 떡이랑 소스를 바리바리 챙겨갔어요. 떡볶이가 없으면 마음이 불안하거든요.

# 잘 살고 싶은 마음을 담아

한아_ 혼자 오롯이 설 수 있을 만큼 단단한 사람이 되고싶어요. 그게 잘 사는 거라고 생각하고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잘 살고 있는 것 같아요. 근데 안 그랬을 때도 있었어요. 지금이랑 별반 다르지 않게 살았는데, 그땐 제가 자기 반성을 너무 많이 했었어요. 한 번의 선택이 인생을 좌우하는 경우는 사실 별로 없잖아요. 근데 일희일비하며 엄청 감정 소모를 많이 했었거든요. 근데 이제는 그렇지 않아요. 조금은 덤덤하고, 단단한 사람이 되었어요.

세나_ 잘 사는거요? 돈 많이 버는거요. (웃음) 진심이에요. 저는 나눌 때 행복을 느껴요. 많이 나누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고요.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망설이지 않고 무언가를 해줄 수 있을 만큼 돈이 많았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본인이 정한 가치를 지키는 삶이 잘 사는거라고 생각해요. 상황에 따라 본인의 의지와 상관 없이 응해야 할 때도, 거절해야 할 때도 있을 텐데, 그런 상황에 주눅이 들어 본인이 정한 가치를 지키지 못할 일은 없었으면 좋겠어요.

아쉽게도 저는 아직 학생이라 돈이 많지 않아요. 아직 제가 인생에서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가치가 무엇인지도 확립되지 않았고요. 하지만 늘 잘 살고 싶다는 생각은 하면서 사는 것 같아요. 완벽하진 않아도, 잘 살기 위해 하나씩 조각들을 채워나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진 출처: jtbc <청춘시대2> 공식홈페이지

나는 오늘도 그대가 건네준 이 온기를 신고서 그 어떤 슬픔도 그 어떤 눈물도 넉넉히 견뎌 걸어간다.
-강아솔, ‘매일의 고백’ (드라마 <청춘시대> ost)

현재를 살아가는 20대, 대학생들의 사는 이야기를 들어 보았는데요. 많은 20대들에게 웃음과 눈물을 선사했던 드라마 <청춘시대>의 장면들 위로 흘러나오던 강아솔의 노랫말을 빌려 말하자면, 우리에게 집, 그리고 함께 사는 이들은 ‘그 어떤 슬픔도 그 어떤 눈물도 넉넉히 견뎌 걸어’ 갈 수 있게 해주는 온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여행은 잠시 멈췄지만, 사는 이야기로의 여행기를 찾아 또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그때까지 모두, 각자의 ‘케렌시아’에서 회복을 모색하는 일상 보내시기를 바랄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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