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ight

소비와 관광에 빼앗겨 버린 도심의 재기획

해외의 글로벌시티라 불리는 도시에 여행을 가면, 반드시 도심부를 방문한다. 그곳은 도시의 역사, 문화 및 경제 중심지이자, 현지인들의 일상 생활 공간이기 때문이다. 관광객들은 현지의 일상 공간에 잠시 들어가 그들의 삶을 구경하고, 그들이 먹고 마시는 것, 입는 것을 체험한다. (물론 대부분 도심은 현지인들에게도 사랑받는 공간으로, 꼭 해외관광객들에게 의지하고 있지만은 않다.)

광화문, 종로, 명동은 이제는 명실상부 글로벌시티로 인식되고 있는 서울의 도심부로, 많은 이들이 방문하는 관광지이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특히 “쇼핑관광 중심지”인 명동을 가장 많이 방문한다. 서울 여행 목적부터 “쇼핑”인 경우도 많다고 할 정도이다. 현지인의 삶과 역사는 광화문이나 종로 등 다른 곳에서 체험하고, 명동에서는 소비만을 빠르게 해치운다. 이에 잘 적응한 탓일까. 명동은 쇼핑하러 온 외국인 관광객이 주인이 된 지 오래다. 이제는 일본어, 중국어로 된 간판과 안내판이 즐비하고, 직원들 역시 불특정의 관광객들에게 일본어, 중국어로 말을 건넨다. 명동은 언제부터 주인이 뒤바뀐 도시가 되어 버렸는가?

‘명동’하면 떠오르는 메인스트리트. 명동의 쇼핑지구에는 특히 외국인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더함

명동은 지속가능한 도시 공간인가?

서울의 과거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명동은 특별한 의미로 남아 있다. 현재도 명동은 최신 유행을 가늠해 볼 수 있는 공간으로서 기능하고 있지만, 과거에 역시 예술을 사랑하고 최신의 담론을 선도하는 문화예술인들의 아지트로 기능했다. 또한 1970~1980년대 한국사회 민주화를 이끈 상징적 공간이었으며, 더 거슬러 올라가면 국내외 독립운동을 물밑으로 지원하는 거점 역할을 하기도 했다. 명동 공간의 경험이 단순 소비에 그치게 된다면, 과연 지속가능하다고 할 수 있을까?

외국인 관광객에게 명동은 쇼핑으로 최적화되어 가고 있는 반면, 현지인들에게 명동은 점점 일상적 장소로 선택받지 못하고 있다. 출퇴근을 위해 또는 업무를 보기 위해 가는 목적성 이외에, 사람들을 만나고, 여가와 문화를 즐기기 위해 명동을 선택하는 비율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현지인에게 선택받지 못하는, 외국 관광객에게만 선택받는 지역이 과연 지속가능하다고 할 수 있을까. 서울시 민간주도 도심활력 프로젝트 ‘명동 타운매니지먼트'(이하 명동TM)는 이러한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언젠가는 제동을 걸어야 했을 쇼핑천국 명동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고, 다시 기획하여 점진적으로 변화를 만들어 보고자 했다. 그런데 왜 타운매니지먼트인가? 타운매니지먼트는 대체 무엇인가?

지역상인들의 이해관계가 지역 활성화의 강력한 동인으로

타운매니지먼트(Town Management)는 지역상인 및 지주들이 협력하여 직접 재원을 마련하고, 지역활성화를 위해 지역을 관리/운영하는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 국가별 차이는 있지만, 미국에서는 BID(Business Improvement District), 영국에서는 TCM(Town Centre Management), 일본에서는 AM(Area Manage-ment)의 이름으로 전개되고 있다. 낙후된 상업업무지역의 상인, 기업, 건물주 등이 공공·민간 거버넌스를 이루어 협의체를 만들고, 실행추진조직으로 NPO를 둔다. 협의체 회원들의 회비, 공공지원금, 특별 세금, 자체 사업의 수익금 등으로 재원을 마련하여, 지역 관리계획의 수립, 외부공간의 통합 개선 및 관리, 다양한 사회실험(택티컬 어바니즘, Tactical Urbanism) 전개, 지역 공동 마케팅 등을 전개한다. 

대표적인 사례로 미국 뉴욕의 브라이언트 파크가 있다. 1970년대 후반 마약, 성매매 등의 소굴이었던 브라이언트 파크의 주변 기업들은 펀드를 설립하고, BID 제도를 활용하여 공원의 환경미화, 시설개선, 홍보를 진행하였다. 재개장 후 약 30년이 흐른 지금, 브라이언트 파크는 뉴욕 맨해튼의 오아시스로 불리며 직장인들이 퇴근 후 찾는 핫플레이스로 떠올랐고, 세계에서 가장 활성화한 공원으로 꼽히기도 했다.

뉴욕의 브라이언트 파크에서 시민들이 여가를 즐기고 있다. 마약과 성매매의 소굴이었던 공원은 지역의 다양한 주체들이 협력하여 진행한 BID 사업으로 인해, 시민의 일상 속으로 스며드는 공간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위키피디아

해외 사례에서 민간이 주도했던 결정적인 이유는, 지역침체가 지역상인 및 기업의 매출에 즉각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상적인 영업활동을 위해 지역 활성화를 해야 했고, 이를 위해서는 주변 기업과 연대/협력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러한 수요가 강력한 동기로 작용하여 지속될 수 있었다.

그렇다면 명동은 어떠한가? 명동의 기업, 상인들은 현재 시급한 문제가 있는가? 사실 현재로서는 시급함은 없어 보인다. 하지만 기업들 입장에서는 여의도, 광화문, 강남 등 다른 업무지역에 비해 지나치게 관광객 중심이다 보니 업무지구로서의 매력도가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고, 상인들 입장에서도 외국인 관광객만을 대상으로 하다 보니 외교문제가 있을 때마다 크게 휘청거리는 것이 치명적인 약점이긴 하다.

이처럼 당장의 시급함은 없지만, 언젠가는 해결해야 할 문제를 안고 있는 것이 명동의 현재이다. 주변 기업들을 독려하여 드라이브를 걸려면 걸 수 있겠지만, 강력한 동력이 없으니 지속가능성이 낮다고 진단할 수 있겠다.

묵묵히 자리를 지켜오던 명동의 또 다른 주체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동TM의 가능성으로 보는 것이 한 가지 있다. 그것은 이 지역에 풍부한 인프라와 자원이 있다는 점이다. 명동TM 시범지역은 명동상권 일부와 업무지역이 포함된 곳이다. 각종 브랜드의 본사와 백화점의 본점, 은행과 금융회사의 본점이 이곳 명동에 입지해 있으며, 넓게는 ‘힙지로’라고 불리며 다시금 사랑받게 된 을지로 인쇄 골목 등 근대 문화자원들도 연결되어 있다. 이처럼 물자와 유동인구가 풍부하기에 어떤 촉발점, 계기만 형성된다면 다른 어떤 곳보다 효과가 기대되는 공간이기도 하다.

명동에는 상업과 금융의 주체들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과거 민주화운동부터 탈핵운동, 여성운동 등 전국 단위의 다양한 사회활동을 펼쳐 온 한국YWCA연합회, 서울 및 명동 직장인 대상의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 서울YWCA, 명동에서 커뮤니티하우스 마실을 운영하며 공간과 커뮤니티를 잇는 플랫폼 역할을 수행하는 사회혁신기업 더함 등의 역동적인 주체들이 있다. 또한 명동을 오가는 많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캠페인과 서명운동을 벌이는 시민주체들도 적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이 주체들은 각 기관의 미션에 따라, 명동이 ‘일과 생활이 함께 가능한 삶의 장소’로 거듭나길 바라고 고민하고 있는 중이다. 조만간 명동에서도 이런 일상을 상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매일 출근하여 사무실에서 일만 하고 떠나는 것이 아니라, 점심을 먹고 20~30분의 시간 동안 나무 아래에 조성된 쉼터에서 조용히 쉬는 것. 퇴근 후 인문학 강좌를 듣거나, 독서모임, 운동모임에 참여하는 것. 그리고 나아가 이곳에서 누군가를 만나고 각자의 이야기를 나누는 것. 이처럼 명동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에게 생활공간을 돌려주고, 관광객들과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

명동의 새로운 스토리

명동TM은 이제 준비 단계이다. 앞으로 공공, 지역의 기업/상인들, 전문가들과 어떤 명동이 되었으면 하는지, 우리가 무엇을 함께 할 수 있을지 이야기 나누는 것이 그 첫걸음이 될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각자 입장에 따른 니즈/이해관계를 서로 확인하고, 공통으로 느끼고 있던 불편한 문제들, 혼자서는 해결하기 어려운 지역에서의 아쉬운 점들을 발굴하는 과정을 진행하려 한다. 공공이 Top-down으로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이 아니라, 지역의 사람들이 Bottom-up으로 다양한 실험과 시행착오를 거치며 문제를 ‘해결하며’, 사용자 중심으로 지역을 만드는 게 궁극적 목표이다.

아마도, 수많은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 이것들을 조율하는 지난한 시간들을 보내게 될 것이다. 누군가는 이렇게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을 왜 하냐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앞으로의 사회는 점점 복잡해져 혼자 빠르게 해결하는 것보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협력을 통해 해결이 가능하고, 그래야 효과가 더 탁월한 일들이 많아질 것이다. 사실,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협력을 통해 궁극적으로 문제가 해결된다는 학습이 있어 왔고, 때문에 21세기에 들어서 함께 일하고 함께 의사 결정하는 방법론이 많은 분야에서 활발히 적용되고 있기도 하다. 명동TM을 이러한 차원에서 이해해 보면 어떨까.

단기간 동안 예산을 들여 공간을 정비하고 종료되는 도심재생 사업과는 달리, 지속적으로 협의할 수 있는 주체들을 모으는 일이 핵심이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내심 기대하는 것은, 이 과정에서 앞서 말한 주체들 외에 다양한 주체들을 더 많이 발견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시민들에게 사랑받는 도시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예기치 못한 재밌는 사건들과 주체들을 만나게 된다. 지금은 삭막한 업무지구이지만, 지역의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하고, 작은 실험과 변화를 만들어 나가다 보면, 사회적, 문화적으로 다양한 사건이 수시로 벌어지고 이야기가 넘쳐났던 과거의 명동처럼, 일과 삶, 일상이 있는 명동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서선영 (사회혁신기업 더함 팀장)

해당 글은 2019년 11월 4일자 <라이프인>을 통해 발행된 칼럼입니다.

소비와 관광에 빼앗겨 버린 도심의 재기획

Tags
소셜디벨로퍼 그룹 더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