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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쓸쓸비용’들을 사회화하는 법

‘쓸쓸비용’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 있는가? 쓸쓸한 마음이나 외로운 상황을 달래고자 사용하는 불필요한 비용을 일컫는 신조어이다. 쓸쓸함을 메우기 위해서 무언가를 사거나, 혼자 밥 먹기가 싫어 휴대폰 전화번호부의 ‘ㄱ’부터 ‘ㅎ’까지를 찾아보곤 하지만 이는 일시적인 해소에 그치고 만다. 이러한 허전함과 고립감은 사람들 틈바구니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사람들은 엘리베이터와 주차장, 집 앞 벤치 등에서 이웃들을 마주하지만, 서로의 안부를 묻거나 일상을 나누진 않는다. 취업사이트 인크루트에서 회원 91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71%가 ‘쓸쓸비용을 쓴 적이 있다’는 답변을 했다고 한다(2017년도 조사). 이렇게 쓰이는 쓸쓸비용만 모아 보아도 꽤 큰 규모의 금액이 될 것 같다.

소비습관 개선을 통해 쓸쓸비용과 같은 감정적 소비지출을 줄이자는 이들도 있지만 이는 문제를 개인화, 파편화하는 흐름을 답습할 뿐이다. 다른 한편에선 원인을 ‘자존감’이라는 심리적 문제에서 찾기도 하는데, 자존감을 어떻게 회복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근원적 물음을 던지고 있지는 않은 것 같다.

쓸쓸비용은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다는 소속감과 충분한 감정 교류를 대체하는 비용이라고 생각한다. 이렇듯 넓게 보면 사회와 연결된 문제이나, ‘소비’라는 개인의 행위 문제로 생각되는 듯해 아쉽다. 쓰면 쓸수록 허탈하기만 한 비용들을 사회적인 방식, 비용으로 전환해 볼 수는 없을까?

쓸쓸비용의 문제는 사회적 고립감과 관련이 깊지만, 개인의 소비행위에 대한 분석에 그치고 마는 경우가 많다. 쓰면 쓸수록 허탈한 이 비용을 다른 방식으로 전환해 볼 수는 없을까? ⓒ pxhere

쓸쓸비용을 커뮤니티 비용으로

공동체 또는 지역사회를 나타내는 말인 커뮤니티(community)는 공간적인 개념만이 아니라 심리적인 결합성과 소속감을 뜻하기도 한다. “독립하고 싶지만 고립되고 싶진 않아”와 같은 말이 공감대를 얻으며 회자되었던 것처럼, 동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이들은 분명, 조금은 느슨한 소속감과 커뮤니티를 원하고 있다.

“독립하고 싶지만 고립되긴 싫어”라는 말처럼 커뮤니티에 대한 동시대인들의 양가적 감정을 이토록 잘 담아낸 표현이 있을까? 많은 이들이 독립적이되 느슨하게 살아갈 수 있는 공동체를 원하고 있다. ⓒ오마이북

우리 주변에서 가장 접근이 용이한 커뮤니티를 꼽아 보자면, 가족, 이웃과 같이 주거를 함께하는 이들일 것이다. 하지만 비용 등의 문제로 이리저리 유목하는 이들에게 ‘마을 공동체’는 무용해진 지 오래이다. 어떻게 하면 주거를 중심으로 한 커뮤니티를 다시 복원시키고, 쓸쓸비용들을 줄여 갈 수 있을까?

생활협동조합 운동이 소비자들을 공급구조에 참여시킴으로써 커뮤니티의 복원에 힘써 왔듯, 주거공간 조성 및 개발 과정에 참여 가능한 토대를 마련하는 일이 그 첫걸음이라 생각한다. 철저하게 영리 방식으로 공급되었던 부동산 개발, 아파트 건설, 주택 관리 영역은 커뮤니티 기반의 사회주택 실험들로 인해 균열되어 가는 중이다. 주택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상품이 생산 과정 이후부터 소비자에게 전달되는 현실 속에서, 개발 단계부터 운영 단계 전반의 적극적 권리를 갖게 되는 사회주택 모델은 가히 혁신적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사회주택의 입주자들은 소비자에서 주도적인 공급자로 포지션을 변경하는 것을 넘어, 개인이 해결하기 어려운 삶의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는 주체로서도 역할할 수 있다. 예컨대 보육과 돌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마을이 함께 공간과 프로그램을 기획한다거나, 취미 또는 자원을 공유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활동들 역시 비용이 들지만, 개인들이 감내해야 하는 비용에 비하면 획기적으로 줄어든 규모일 것이다. 각자가 가진 시간과 재능을 공유한다면(타임뱅크), 들여야 하는 화폐 비용은 더욱 줄어들 수 있다. 이처럼 커뮤니티 비용은 다면적인 만족감과 호혜의 가치로 되돌아온다는 점에서 쓸쓸비용과 대조된다. 

영국 로치데일과 캐나다 밴쿠버의 사례에서 배우다

한국에서는 사회주택 실험이 이제 막 태동하는 단계이지만, 북미/유럽의 국가들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사회주택이 주류의 주거 형태로 자리 잡고 있다. 오늘은 두 가지 해외 사례를 소개할까 한다.

영국의 로치데일 지역주택 상호조합(Rochdale Boroughwide Housing, 이하 RBH 상호조합)은 영국 제2의 도시인 맨체스터 인근에 위치하고 있다. 로치데일은 빈곤율과 실업률이 영국 평균을 훌쩍 웃도는 위험지역으로 퇴화되고, 노후주택이 늘어남에 따라 재개발 이슈가 중요 현안으로 떠오르는 지역이었다. 로치데일 지방정부는 13,500여 채의 재건축이 필요한 공공임대주택을 RBH 상호조합에 전체 매각하여 사회주택 방식의 적정주택(affordable housing)으로 전환하기로 결정하였다. 

RBH 상호조합의 주도로 공급되는 사회주택은 단순 주거 문제 해결만을 목표로 삼지 않았다. 그곳에 살고 있는 시민들, 특히 취약계층의 다양한 삶의 문제를 함께 해결할 수 있는 조건들을 만들어 내고자 했다. 일자리 창출, 돌봄 서비스, 복지서비스 연계 등 사회적이며 통합적인 지역재생 효과를 확산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이다. 게다가 RBH 상호조합은 영국 내 최초로 직원과 주민이 함께 소유하고 의사 결정에 참여하는 방식을 채택하였다. 이는 공공임대를 활용한 새로운 방식의 주거 혁신 사례로 자리매김 하고 있다.

캐나다 밴쿠버에서는 비영리단체인 캐나다BC주 주택협동조합연합회(Co-operative Housing Federation of BC, 이하 CFH)가 정부와의 파트너십을 통해 장기 저리로 공공택지를 확보하고 민관협력기금 등을 조성하여 사회주택 공급을 추진하고 있다. 다양한 시도와 실험을 통해 복잡한 삶의 문제 중 강력한 문제 한 가지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바로 빈부의 격차로 인한 주거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한 혼합소득(mixed income)을 기치로 세워 이 문제 해결에 집중하는 것이다. 또한 이들은 커뮤니티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 커뮤니티 비즈니스를 수행하는 전문 기업들을 협력사로 두고 있기도 하다.

2010년 동계올림픽 선수촌의 일부를 사회주택으로 운영하는 등 현재 밴쿠버에는 다양한 사회주택 모델들이 곳곳에 확산되어 있다. 100년이 넘는 사회주택 ‘Quebec Manor’를 밴쿠버 역사 유물로 지정할 정도이니, 사회주택에 대한 밴쿠버 시민들의 자부심을 이를 통해 짐작해 볼 수 있겠다. 이처럼 캐나다 내에서 사회주택은 대안적 주거모델을 넘어, 주류 부동산 시장의 한 축으로서 사회적 가치를 창출해 내고 있다.

10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사회주택 Quebec Manor ⓒ 더함

“협동조합 기업이 세상을 더 나아지게 한다”는 내용의 홍보물이 Quebec Manor 벽면에 게시되어 있다. ⓒ 위키피디아 커먼즈

사회주택의 가능성과 희망

언젠가 사회주택 입주자들을 대상으로 쓸쓸비용에 대한 설문을 진행해 본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상상해 본다. 삶에서 느끼는 고충들이 저마다 있기에 충동적으로 사용하는 비용 자체를 없앨 수는 없겠지만, 일반적인 주거 환경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만족감들로 인해 쓸쓸비용의 규모가 줄고 있다는 단초들이 발견된다면, 소셜 디벨로퍼 일원으로서 큰 보람을 느낄 것 같다.

현재 다양한 형태와 규모의 사회주택들이 공고한 대한민국 부동산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더함에서 조성하고 있는 ‘위스테이’ 역시 그 중 하나이다. 이러한 도전은 소수의 디벨로퍼가 가진 역량만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란 점을 강조하고 싶다. 사회주택의 공급자로서 함께 참여하고, 각자가 느낀 삶의 변화들을 확산하려는 시민들의 의지가 있어야 가능하다. 100년의 역사 속에서 우리는 이제 막 가능성을 발견했을 따름이다. 영국과 캐나다의 역사와 철학을 단기간 내 따라잡기는 수월치 않겠지만, 한국형 사회주택 모델을 세우기 위한 의미 있는 실험들은 계속되어야 한다.

김종빈 (사회혁신기업 더함 이사)

해당 글은 2019년 9월 23일자 <라이프인>을 통해 발행된 칼럼입니다.

수많은 ‘쓸쓸비용’들을 사회화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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