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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을 보관하고 흐르게 하는 곳, 창신동 ‘기쁨곡간’ 스토리

from. 김은지

[from더함] 더함피플의 생각, 일상, 특별한 순간들을 나눕니다. 서로의 이야기에 대한 이해와 공감으로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더불어 소소한 이야기들이 모여 더욱 풍성해질 더함을 기대해봅니다.

그렇게 가고 싶었던 회사에 입사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우울증이 생겨 퇴사했다. 그때 들은 말이 나를 움직이게 했다. “네 나이 때는 다 그래.” “마케터 하려면 저녁은 포기해야지.” 언제부터 우리 삶이 원래 그랬고, 으레 포기해야 했을까.

내게는 지키고 싶은 것들이 있었다. 시를 좋아하는 내가 시를 읽고 쓰는 일을 계속했으면,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하는 친구가 연필을 놓지 않았으면. ‘창조성 발현을 통한 기쁨의 회복’이라는 원대한 꿈을 갖고 창신동 봉제 공장 사이에 ‘기쁨 곡간’을 열었다.

기쁨곡간은 김은지 매니저가 좋아하는 것을 지키기 위해, ‘창조성 발현을 통한 기쁨의 회복’을 위해 창신동 봉제골목 사이에 세워졌다. (사진제공: 김은지)

스스로를 ‘곡간지기’라 칭하고 손님들을 ‘참새’라고 부르며 네 평 남짓한 공간에서 다양한 일을 했다. 독서 모임, 취미 수업, 작은 공연, 벼룩시장 등 누구나 자신을 기쁘게 만드는 활동을 할 수 있었다. 이런 공간이 신기한지 SNS를 통해 다양한 이가 연락을 해왔다.

그 중 한 사람이 뉴질랜드에 사는 소민 씨였다. 연락을 주고받은 지 8개월이 지났을 때, 곡간 문이 열리고 휴대전화에서만 보던 얼굴이 깜짝 등장했다. 뉴질랜드에서 온 참새였다! 그때 우리는 ‘인생 젠가’를 만들고 있었다. 젠가(나무 막대를 쌓아 놓고 무너뜨리지 않게 하나씩 뽑는 게임)에 질문을 더해 깊은 대화를 이끌어 내려는 목적이었다. 그녀는 오자마자 쉰 개가 넘는 나무 막대에 일일이 질문지를 붙이는 작업을 세 시간가량 함께했다. 질문에 대한 서로의 답을 듣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녀가 한국을 떠나기 전에 한 말이 떠오른다. 내가 한 질문, 기쁨 곡간이라는 작은 공간과 거기서 만난 참새들을 통해 아름다운 대화를 나누는 것이 참 중요하다는 걸 알았다고. 생각해 보지 않은 삶의 모습과 질문이 스스로를 돌아보게 했다고.

나는 참새들이 이곳에 와서 무엇을 함으로써 기쁨을 가져간다고 생각했다. 이제 보니 그들에겐 이미 넘치는 기쁨이 있었다. 서로가 제때, 제자리에서 만나기만 하면 되었던 듯하다. 그것만으로 내가 공간을 지킬 이유는 충분하다. 참새들이 철새처럼 떠돌다가 들러 서로를 만날 수 있도록.

넘치는 기쁨을 가지고 떠도는 철새같은 참새들을 제때, 제자리에 모으기 위해 공간을 지킨다는 김은지 매니저. (사진제공: 김은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믿고, 내가 믿는 일을 위해 노력하면 그것은 어느 순간 내 것이 된다.” (헤르만 헤세)

from. 김은지

‘청신호 명동’을 운영하는 지기이자 기쁨곡간의 곡간지기
‘기쁨이 넘치는 창조적 삶’을 살아가고 있는 기쁨주의자

※ 이 글은 <좋은생각> 5월호에도 실린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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