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ight

주거 공동체가 변화시킬 저출생 사회의 미래

양동수 (소셜디벨로퍼 그룹 더함 대표)

개인의 삶과 공동체의 삶 모두 흔들리는 ‘불안’의 시대

2020년, 사망자의 수가 출생아 수를 넘어서며 인구가 자연 감소하는 데드크로스(deadcross) 현상이 시작됐다. 부디 이 현상이 일시적이기를 바라지만, 2018년 이후 1.0 아래로 떨어져 회복하지 못하고 있는 합계출산율은 상황이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 여기에 작년 11월에는 서울의 아파트 매매가 평균이 12억에 근접했고, 가계 소득과 자산 격차는 날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2030 세대들은 당장 결혼의 문제보다 취업난과 고독사 문제에 직면해 있으니,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자녀 계획이 아니라 흔들리는 삶을 고정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특히 OECD에서 실시했던 사회적 관계망에 대한 조사결과는 큰 충격으로 다가왔는데, 한국은 ‘곤경에 처했을 때 의지할 가족과 친구가 있느냐’라는 질문에 ‘그렇다’라고 답변한 비중이 OECD 국가 최하위에 속했다. 세대별로 체감하는 바가 다르겠지만, 거주 형태 등 다양한 사회적 지표를 참고했을 때 젊은 세대일수록 어떤 커뮤니티에도 속하지 않은 각자도생의 상황에 놓여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러므로 스스로의 미래도 보장할 수 없고, 의지할 관계나 공간도 희박한 불안의 시대에 아이를 낳으라고 하는 것은 굉장한 도박일 수 있다. 바꾸어 말해 이 불안을 해소할 수 있다면, 개인의 삶뿐 아니라 공동체의 삶 또한 나아질 수 있을 거라 생각해 본다.

불안은 보통 우리의 몸이나 마음, 혹은 둘 모두의 균형이 깨졌을 때 나타나곤 한다. 몸과 마음은 연결되어 있어 하나라도 중심을 잃으면 나머지에 영향을 미친다. 우리 사회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이 사회를 지탱하는 물리적 공간(정주 환경)과 심리적 토대(사회적 안전망) 모두가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의사를 찾아가 보면 그들은 몸과 마음 모두를 개선해야 한다고 말한다. 가령 규칙적인 운동이나 약물 복용으로 호르몬의 수치를 유지한다거나, 명상을 통해 긍정적인 사고를 배양해야 한다는 식이다. 그러므로 현재 한국사회 기저에 깔린 이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정주 환경이 보장돼야 할 뿐만 아니라, 심리적 완충 역할을 하는 사회적 안전망 또한 필요하다.

정주 환경만큼이나 중요한 사회적 안전망, 그리고 이웃의 존재

주거에 있어 사회적 안전망이란 아이를 맡길 수 있는 이웃, 독거노인의 말동무가 되어주는 친구 등 정주(定住)하는 데 필요한 심리적 안정감을 제공하는 다양한 요소들을 의미한다. 이는 주택에 거주하는 것만으로는 충당할 수 없는, 주거공간과 주민들 간의 관계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이웃 간의 불화로 중범죄가 일어나기도 하는 오늘날 이웃만큼 가깝고 위험하게 느껴지는 존재도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평소 아이를 돌보기 힘든 맞벌이 부부는 그들의 부모에게 아이를 맡기거나 돈을 들여 사설 돌봄 서비스를 받기도 한다. 이웃을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웃의 존재를 알게 되고, 그들과 관계를 맺기 시작하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지지 않을까.

실제로 내가 살고 있는 소셜믹스 아파트는 다자녀 가구에 대한 혜택 때문인지 단지 내에 다자녀 가구의 비중이 비교적 높다. 이들을 대상으로 한 구체적인 커뮤니티나 프로그램이 존재하는 건 아니지만, 아이로 연결되는 이웃과의 연대가 느슨하게나마 존재한다. 한창 뛰어 놀 나이의 어린이들이 이웃집 아이들과 놀이 공동체를 형성하고, 집을 옮겨 다니며 놀기도 한다. 부모가 아이를 호출하면 이웃집 부모가 아이의 위치를 알려준다. 아이를 믿고 맡길 수 있는 이웃이 있다는 것은 아이를 키우는 데 큰 장점이다. 신기한 것은 이미 2~3명의 자녀를 둔 가정이 아이를 더 갖기도 한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맥락의 중요성을 실감하게 된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에게 맥락/상황(context)은 중요한 동인(動因)이다. 우리는 주변환경에서 위협이 되는 것이 있는지를 파악하고, 이 정보를 바탕으로 다음의 행동을 결정한다. 모두들 지인들의 선택이나 분위기에 이끌려 무언가를 결정하는 경험을 해본 적 있을 것이다. 맥락이 그렇게 유도하는 것이다. 자녀를 더 갖는 내 이웃들의 선택 또한 그런 맥락에서 기인한 것일지도 모르겠다.그렇다면 관계를 맺기 어려운 상황이나 환경에 처한 이들도 적절한 맥락에 놓이도록 도와준다면 여유롭게 가족을 꾸리고 자녀와 함께하는 미래를 꿈꿀 수 있지 않을까. 주거 문제를 공급만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안전망의 문제로 봐야 하는 이유다.

사회적 안전망 관점에서 접근한 아파트형 마을공동체 ‘위스테이’

경계석을 없애 모두가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위스테이별내 단지의 전경 (사진 제공 : 더함)

주거 문제를 사회적 안전망의 문제로 접근한 아파트는 무엇이 다를까. 국토부 시범사업으로 국내 최초의 아파트형 마을공동체인 위스테이별내를 조성하면서 가장 신경 썼던 부분은 바로 돌봄 등 일상의 문제를 함께 해결할 수 있는 방향으로 커뮤니티를 촉진하는 일이었다. 임대아파트의 특성상 정해진 기간 동안 안정적인 삶을 꾸릴 수 있다는 사실은 분명 장점이지만, 사람들의 관계망을 쌓고 맥락을 형성하는 건강한 공동체를 꾸리는 것 또한 중요했다. 그러기 위해 위스테이에 입주 예정인 이들의 인구 구성을 살폈고, 한두 명의 자녀를 가진 3040세대 맞벌이 부모가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리고 이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돌봄의 문제를 직접적으로 해결해줄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했다. 단지 내 어린이집은 물론, 돌봄 공백을 메우기 위해 돌봄센터를 유치했다. 어린이집의 개원이 연기됐을 때는 맞벌이 가정을 위해 이웃들이 일일 선생님이 되어 긴급 돌봄이 이뤄졌다. 영아를 키우는 입주민들은 동네 카페 내부에 위치한 키움터를 중심으로 공동육아 동아리 활동을 현재까지 이어오고 있다.

입주 후 1년 반이 지난 지금, 위스테이별내에 거주하는 부모들의 삶은 어떻게 달라지고 있을까. 입주자들을 대상으로 한 주거 만족도 설문(POE 조사) 결과, 돌봄에 들어가는 지출은 (아이들의 성장으로 인해) 이전과 같거나(47%) 늘었지만(34.1%), 응답자의 77.3%가 위스테이 입주 후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늘었다고 밝혔다. 부모의 역할이 중요한 시기에 부모와 함께하는 시간이 늘었다는 것은 같은 비용을 들이더라도 돌봄의 질이 달라졌다는 점을 의미한다. 나아가 공동체 활동에 참여하는 주민들 중 아이를 맡길 수 있는 이웃의 수가 3명 이상인 경우는 34.3%, 10명 이상인 경우는 35.8%, 20명 이상인 경우는 20.9%에 달했다. 이러한 결과는 아이를 키우는 데 있어 관계망의 형성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지표가 되어 준다.

위스테이 입주 전에는 주로 어린이집, 학교, 학원 등 돌봄을 대신해 주는 교육 시스템에 의존했다면 입주 후에는 단지 내 공간에서의 공동체 활동으로 그 반경이 확대됐다. 이로 인해 아이들의 생활 또한 입체적으로 변하고 있다. 단순히 학습에 국한된 프로그램이 아니라 잔디광장, 메이커 스페이스, 도서관이나 돌봄센터를 넘나들며 경험의 폭을 넓힐 수 있게 됐다. 다양한 공간이 확보되고 아이를 맡길 수 있는 이웃이 생기니, 어른들도 자신의 시간을 갖고 단지 내 동아리 활동에 참여하기도 한다. 그런 어른들을 보고 자란 아이들은 어린이 자치회를 만들어 단지 내에 자전거 주차장을 만드는 등의 주도적인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최근에는 주민들의 주도로 상가에 ‘스스로 깨치는 아이들’이라는 이름의 마을 공부방이 개설되었고, 미처 돌봄 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초등생들을 대상으로 돌봄 공백을 메우고 있다. 정보의 수동적인 주입이 일어나는 외부 서비스와는 달리, ‘스스로 깨치는 아이들’의 아이들은 누가 가르치거나 지시하지 않아도 자신이 배우고 싶은 것을 직접 찾아 나서고 몸으로 체험한다.

평소 공동육아모임이 열리기도 하는 동네카페 내 키움터

올 2월 입주를 시작하는 위스테이지축에서는 돌봄의 대상을 좀 더 전면적으로 넓힐 수 있는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다. 그 프로그램이란 가령 돌봄 공백이 발생하는 시간대에 아이들을 특정한 장소로 안내하여 지정된 선생님과 함께 놀이/체험 활동을 하게끔 하는 것이다. 이에 더해 언제든 아이를 맡길 수 있는 상시돌봄체계를 구축할 예정이다. 아직 구체화되지는 않았지만 관련된 소셜 벤처나 비영리 단체와 연결해 마을 내에서 선생님을 양성하는 등 지속 가능한 시스템을 만든다면 고용의 문제 또한 일부 덜어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게 되면 그야말로 온 마을이 아이를 돌보는 셈이 된다. 이 방식이 안정적으로 정착되면 위스테이지축 단지를 넘어 좀 더 넓은 범위의 지역사회로 확대해, 돌봄에 대한 사회적 불안을 해소할 수 있는 훌륭한 사업 모델이 되어 줄 수도 있을 것이다. 이처럼 공동체를 통해 돌봄의 문제를 해소하고 긍정적인 맥락을 만들어 내면, 그 공동체 안에 있는 사람들도 점차 자녀와 함께하는 미래를 꿈꾸지 않을까.

저출생 위기, ‘긍정적인 맥락’을 제안하는 건강한 공동체가 필요하다

‘아이를 키우는 데에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자녀 양육은 쉬운 일이 아니다. 지원금이나 공공시설 확충 등, 저출생 시대를 맞이해 지원 정책들이 강화되고 있는 것은 고무적인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합계출산율이 오르지 않는 현상은 이제 다른 시선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암시하는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위스테이 사례는 현 상황을 전환시킬 수 있는 ‘커뮤니티 공간’과 ‘공동체’라는 화두를 던졌다고 생각한다. 커뮤니티 공간, 그리고 공동체는 어떻게 나와 아이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가, 그리고 이것은 어떻게 가능한가.

첫째, 커뮤니티 앵커 역할을 하는 다양한 기능의 ‘하드웨어’가 필요하다. 위스테이별내와 지축에는 돌봄, 창작, 건강, 여가 등 일상을 풍부하게 만들어 주는 기반 시설이 법정 대비 2.5배 이상으로 조성되어 있어 이곳을 중심으로 다양한 활동이 가능하다. 특히 이러한 공간들은 입주 전 단계에서 입주예정자들의 니즈를 반영하는 ‘커뮤니티 디자인’ 과정을 거쳐 설계되어 운영에 더욱 탄력을 받을 수 있었다. 실제로 위스테이별내에서는 이미 33개의 동아리(이 아파트에는 약 500세대가 산다)가 공간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으며 대부분의 활동은 주민들의 주도로 진행된다.

둘째, 임대 관리, 시설 관리를 넘어 ‘커뮤니티 관리’를 주거 서비스 내에 포함시켜 입주민들 간의 교류를 자연스럽게 촉진할 필요가 있다. 커뮤니티는 ‘자연스럽게 발생’되는 것이 아니다. 입주자들의 니즈를 파악해 커뮤니티 프로그램에 반영하고, 이를 정성스레 운영하는 적극적인 주체들이 반드시 필요하다. 커뮤니티 프로그램은 사람들 간의 교류를 자연스럽게 촉진해 익명성에 가려져 있던 이웃의 존재를 환하게 밝힌다. 이렇게 형성된 관계망은 육아, 돌봄 등의 문제를 공유하며 품앗이를 하는 등, 취향을 나누는 데서 나아가 일상의 무게를 분담한다. 실제로 단지 내 동아리에 참여 중인 한 입주자는 아이가 생긴 후 10년에 가까운 시간동안 자신의 취미를 잃었다가 아이들이 단지 내에서 놀이 공동체를 형성하며 자신의 시간이 생겼다고 밝혔다. 앞서 설문 조사 결과를 인용하며 밝혔던 것처럼, 이것은 자녀 교육에 있어 질적인 차이로도 이어진다.

셋째, 공간을 향유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관계망과 역량을 기반으로 하는 ‘휴먼웨어(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운용하는 인간의 역량, 관계망 등을 아우르는 말)’가 필요하다. 위스테이별내는 입주 전부터 미래의 이웃과 함께 설계 과정에 참여하는 워크숍을 통해 공동체로서의 기반을 닦았다. 입주 후에는 이들을 엮어주는 동아리, 행사 등의 커뮤니티 프로그램에 참여함으로써 공동체로서의 결속을 다지고 있다. 공동체 내부에서의 펀딩, 기획을 통해 건강한 먹거리를 취급하는 협동상회와 돌봄 공백 문제를 해소하는 공부방(스스로 깨치는 아이들)이 조성된 것은 고무적인 사실이다. 이러한 ‘휴먼웨어’의 조성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입주자들을 ‘소비자, 고객, 정책대상자’가 아닌 ‘이용자이자 협력자’로 바라보는 관점의 전환이 필수적이다.

이렇게 조성된 하드웨어, 소프트웨어(커뮤니티 관리 시스템), 그리고 휴먼웨어가 조화를 이루어 건강한 공동체를 만들어 낼 수 있다면 이웃의 부재로 발생했던 일상의 여러 문제 또한 상당부분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 본다.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에 대한 불안 또한 줄어들 것이다. 그런 점에서 위스테이 아파트 공동체의 사례가 잘 자리잡아 좀 더 넓은 광역 단위로 확산되며 선순환 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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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글은 토지주택연구원에서 발행하는 <LH 인사이트> 44호에 기고한 글을 일부 편집한 내용입니다. ☞ LH 인사이트 44호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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