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and Culture

꾸물꾸물, 고야의 세계는 넓어지고 있다

위스테이별내 입주자 인터뷰
정고야 어린이

[옆집 사람] 생텍쥐페리의 말처럼, ‘사이’라는 건 서로 떨어져 있는 거리로 측정되는 게 아닌가 보다. 가까이 있어도 먼 사이가 있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이웃들이 그렇다. 인사를 한다든가 안부를 묻는 대신, 경계 어린 눈빛으로 서로를 살핀다. 아파트형 마을공동체, 위스테이는 바로 그런 점에서 달랐다. 얼굴도 모르는 내게 먼저 인사를 건네는가 하면, 해 질 무렵에는 단지 안이 자전거 타는 아이들로 복작였다. 순간 단지 전체가 하나의 커다란 집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의 세계는 종종 주변으로 밀려난다. 그러나 위스테이에는 아이들의 자리가 있다. 위스테이의 공동체 활동을 눈여겨 본 아이들은 스스로 ‘어린이 자치회’를 만들었고, 어른들은 그 세계를 존중해 이런저런 일을 맡기기도 한다.

고야는 대추알 같은 입술로 수줍게 말을 골랐다. 이어진 질문에도 침을 꼴딱이며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그는 어린이자치회에 참여해 자전거, 킥보드 주차장을 만들고 마을 결혼식 때 합창을 하기도 했다. 나름의 비밀기지도 있다. 재밌는 건 어머니도 어디인지 더 묻지 않았다는 거다. 어른과 아이의 세계는 서로의 리듬을 유지하며 공존하고 있었다.

Q. 고야 반가워요. 자기소개 부탁해요.

2학년 정고야입니다.

Q. 바깥에 자전거가 있던데, 자전거 좋아해요?

네, 그거 타고 친구들이랑 같이 놀아요.

Q. 아파트에 언제 이사 왔는지 기억나요?

두 달 전이었던 것 같아요.

Q. 여기서 살아보니 어때요? 제일 좋아하는 곳이 있어요?

너무 좋아요! 가끔 아빠랑 비디오 게임하러 창작소에 가요. 동네 카페도 자주 가고요.

Q. 동네 카페 커피 정말 맛있던데. 고야는 무슨 메뉴 가장 좋아해요?

패션 후르츠요!

Q. 그럼 집에서는 어디가 가장 좋아요?

제 방이 가장 좋아요. 만드는 걸 좋아해서 종이로 책 만들었어요. A4 용지를 자르고 호츠키스로 찝어서 그림 그려요. 근데 레고가 제일 좋아요.

Q. 책을 만든다고 하니 궁금해요. 내용 알려줄 수 있어요?

만화책인데, 내용은 비밀이에요. (웃음)

실은 최근에 ‘유령탐구기록노트’라는 책을 만들었거든요. 유령을 만나면 기록해두려고요.

Q. 오 정말요? 유령 만났어요?

그게, 아직은 없어요.

Q. 앞으로 만나게 될지도 몰라요. 책은 자주 읽는 편이에요?

심심하면 책을 봐요. 자주 손이 가는 건 책장에 다 있고요. 세계 평화를 지키려는 애들이랑 악당이 싸우는 책이 있는데 그걸 제일 좋아해요.

Q. 단지 안에서 사귄 친구가 있나요?

그냥 놀다 보면 다 같이 어울리게 돼요. 학교 다녀와서 거의 붙어 있어요.

@어머니 : 캄캄해질 때까지 놀아요. 애들이 여기 오고는 입이 다 헐었는데, 거의 매일 밖에 나가 놀아서 그래요. 처음에는 고야가 친구들이랑 놀고 들어오면 흥분 상태여서 밤늦게까지 잠을 못 잘 정도였어요.(웃음) 입주 전부터 조합원들과 같이 활동했는데, 그때 만난 친구들을 여기서 만났으니 신났죠.

근데 요즘은 어두워져서 6시까지밖에 못 놀아요.

Q. 친구들 만나면 뭐하고 놀아요?

자전거 타기도 하고, 우리끼리 노래 만들어서 부르기도 하고 네 발 자전거 타는 애들한테 두 발 자전거 가르쳐 주기도 해요. 엄마들이 회의하러 오면 다 같이 집에서 놀고요. 종종 창문으로 신호를 주고받기도 하는데, 7동에서 제 방이 보이거든요. 거기 사는 친구랑 불빛을 비추면서 놀아요. 신호 보내는 게 재밌어요.

Q. 일종의 신호 같은 건가? 불빛을 세 번 번쩍이면 밖으로 나오라는.(웃음) 나는 20대가 되어서야 두 발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는데, 친구들한테 알려준다니 대단해요.

쉽지 않았지만 한두 명 정도 성공했어요.

Q. 고야가 어린이 자치회도 한다고 들었어요.

처음에 어린이들한테 의뢰가 들어왔거든요. 어린이 자전거 그렇게 세워 두면 안 된다고요. 그래서 주차장도 만들었어요. 동네 카페 앞에. 저는 잘 지키는데, 형들은 입구 바로 앞에 세워두기도 하고 그래요. 그럼 그냥 가는 척하다가 똑바로 세워 두기도 해요.

Q. 다른 데는 자전거랑 킥보드가 엉켜 있는 경우가 많은데, 좋은 약속을 만든 것 같아요. 어린이 자치회에서 했던 다른 활동도 있을까요?

이사 온 사람들 환영해 주는 웰컴파티 때 노래 불러줬어요. 가르쳐주는 어른도 없었는데 그냥 다 같이 했거든요. 10명 넘게 모여서 몇 번 연습하고 그랬어요. 위스테이 합창단에도 참여하고 있는데, 마을 결혼식 때도 노래 불렀어요.

Q. 영상으로 봤는데 신부님이 듣고 눈물을 흘리시더라고요.

저희가 노래하기 전부터 눈물 흘리고 있었는데요.(웃음) 그래도 뿌듯했어요.

Q. 자치회는 몇 살부터 몇 살까지의 친구들이 활동하는 거예요?

6살부터 3학년까지 있어요.

Q. 서로 나이가 다른데 이야기할 때 힘들지 않아요?

어린애들은 하다가 중간에 갈 때가 많아요. 근데 그걸로 힘든 적은 없어요.

Q. 서로 모이기로 약속한 날이 있나요?

요일이 정해져 있기는 한데, 요즘은 안 해요. 우리가 할 수 있는 걸 찾는 중이에요.

Q. 고야는 핸드폰이 없는데, 친구들은 어떻게 만나요?

날짜를 정해서 모이는데, 대부분 학교 끝나면 바깥에서 놀다가 만나게 돼요.

Q. 앞으로 동네에서 해보고 싶은 활동 있어요?

야시장! 여기 이사 오기 전에 아파트에서 야시장을 1년에 한 번씩 했거든요.

Q. 자전거도, 책도 그렇고 좋아하는 게 정말 많은 것 같아요. 근데 야시장은 왜 하고 싶어요?

먹을 것도 많고, 오래 놀 수 있으니까요. 딱히 거기서 팔고 싶은 건 없어요.

Q. 어린이 자치회가 있는 곳이 또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런 활동이 되게 특별해 보여요. 주변에는 자랑한 적 없어요?

너무 자랑할 게 많아서 말 못 하겠어요.(웃음) 시설도 너무 좋고, 놀 것도 많고요. 잔디 광장에서 메뚜기도 잡을 수 있어요. 여치도 있고요. 근데 잡으면 다 놓아줘요.

Q. 여기 살면서 불편했던 점은 없었어요?

아직 없어요.

Q. 형이 고야 말고 다른 어른들도 인터뷰했는데, 그분들은 이사 오고 자기가 달라졌다고 하시더라고요. 고야네 부모님은 어떤 것 같아요?

엄마 아빠가 돈을 너무 팍팍 써요.(일동 웃음)

@어머니 : 이사 오면서 물건을 많이 버렸거든요. 그래서 산 거예요.

Q. 고야도 새 물건 생겨서 좋지 않아요?

… 근데 제 것은 없어요.

Q. 지금 제일 가지고 싶은 게 있어요?

레고! 근데 엄마가 죽었다 깨어나도 레고는 안 사준대요.

Q. 나도 어릴 때 레고 자주 가지고 놀았는데. 그때 부모님한테 사달라고 졸랐거든요. 또 달라진 모습이 있을까요?

엄마가 평소에는 친구들을 잘 만나지 않았는데, 여기서는 많이 만나는 것 같아요.

Q. 고야는 초등학교에 다닌다고 했는데, 학교 친구들이랑도 잘 어울리는 편이에요?

학교 친구들이랑은 축구를 많이 해요. 동네 친구들은 자전거를 타고 여러 가지 활동을 하고요. 여자애들은 밖에 나가 놀거나 책을 읽어요.

Q. 학교는 보통 동갑내기 친구들인데, 동네 친구들은 연령대가 다양하잖아요. 누구랑 노는 게 더 재밌어요?

둘 다 재밌는데, 동네 친구들이 더 재밌어요.

Q. 다른 동네 사는 친구들도 학교에 많을 텐데, 조금 다르다고 느낀 적 있어요?

친구들 동네는 애들이 거의 나와 있지 않아요. 여기는 시설도 많은데.

@어머니 : 여기 애들은 거의 매일 나가는 것 같은데, 다른 단지는 불안해서 그런지 별로 보이지 않는 것 같아요. 누가 사는지 모르니까. 전에 살던 아파트에서는 1주일 중 상황이 될 때만 나갔거든요. 근데 이곳 아이들은 틈만 나면 나가더라고요.

Q. 고야가 전에 살던 곳과 비교하면 어떤 것 같아요?

거기는 단지 안에 차랑 오토바이가 지나다녔거든요. 근데 여기는 차가 지하로 다니니까 막 뛰어놀 수 있어요. 그리고 거기는 놀이터 그네가 부러져서 안 좋았어요.

Q. 그랬구나. 동네에 무서운 형들도 없는 것 같고.

정말 그래요. 전에는 나쁜 말 하는 형들도 있었거든요.

Q. 고야한테 직접 나쁜 말 했던 형은 없죠?

그런 적은 없어요.

Q. 그나저나, 고야는 비밀기지 있어요?

당연하죠. 저도 비밀 장소 있어요. 총 세 군데인데, 7동에 두 개, 5동 가까이에 하나 있어요. 자세한 건 비밀.(웃음) 물론 어른들도 몰라요.

Q. 그럼 거기에 숨겨둔 게 있어요?

연필이랑 종이밖에 없어요.

Q. 나는 오래된 아파트에 살았었는데, 나무가 울창하게 우거진 곳에 터널 같은 공간이 있었거든요. 거기에 먹을 거 숨겨두고 그랬는데.

우리도 각자 먹을 것 가져와서 돗자리 펴고 먹기도 해요.

Q. 고야는 혹시 동생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 있어요?

강아지 동생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근데 엄마가 안 된다고 했어요.

@어머니 : 동생은 돈 주고 사는 게 아니라, 인연이 돼야 만나는 거야.

Q. 마지막으로 어른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게 있나요? 아니면 친구들에게라도.

어른들한테 할 말 있어요! 회의할 때 우리 얘기 좀 하지 말았으면 좋겠어요.(웃음) 그리고 우리가 놀 때는 시끄럽다, 조용히 해달라고 하면서 어른들 목소리가 더 커요. 그럼 우리가 딴 데 가서 놀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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