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and Culture

우리는 갈수록 단단해진다

위스테이별내 입주자 인터뷰
민현기 님

[옆집 사람] 생텍쥐페리의 말처럼, ‘사이’라는 건 서로 떨어져 있는 거리로 측정되는 게 아닌가 보다. 가까이 있어도 먼 사이가 있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이웃들이 그렇다. 인사를 한다든가 안부를 묻는 대신, 경계 어린 눈빛으로 서로를 살핀다. 아파트형 마을공동체, 위스테이는 바로 그런 점에서 달랐다. 얼굴도 모르는 내게 먼저 인사를 건네는가 하면, 해 질 무렵에는 단지 안이 자전거 타는 아이들로 복작였다. 순간 단지 전체가 하나의 커다란 집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60+센터는 ‘경로당’이 아니다. 시니어들이 모이는 공간이라는 점에서는 비슷하지만, 그 안에서 활발한 배움과 교류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자급자족’을 모토로 일자리 창출을 꾀하고 있는데, 얼마 전부터 마을 청소를 시작했다. 이들은 ‘노인’이라는 단어가 품고 있는 수동성에 머물러 있지 않는다.

민현기 님은 위스테이에 입주 후 60+센터의 회장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무수한 가능성을 쏟아냈다. 하나하나 매력적인 아이디어였다. 그의 에너지는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웠다.

Q. 처음 뵙겠습니다. 강직한 인상을 가지고 계시네요.

군 생활을 오래 해서 그런 것 같아요. 군에서 22년, 전역 후 예비군 지휘관으로 12년을 복무했거든요. 은퇴 후에는 손주를 돌보며 생활하고 있어요. 현재 위스테이별내 60+ 센터 회장을 맡고 있기도 하고요.

Q. 위스테이에 입주하기까지의 주거 역사가 궁금해요.

1977년 9월에 장교로 임관했어요. 대위까지는 전부 BOQ(독신 장교 숙소)에서 생활했죠. 81년에 결혼했는데, 그때부터 관사 생활이 시작됐어요. 업의 특성상 근무지를 옮겨 다니는 일이 잦았고, 관사가 있는 곳에서는 관사에서, 그렇지 않은 곳에서는 전월세 형식으로 집을 옮겨 다녔어요.

최초의 내 집은 군인공제회를 통해 분양받은 아파트였어요. 하지만 아들의 학교 문제로 태릉으로 거처를 옮겨, 내 집에서 직접 살아보진 못했죠. 그 후로 전세살이를 해오다가 위스테이에 입주하게 됐어요.

Q. 제 주변에도 군에 복무하시는 아버지를 둔 친구가 있었는데, 이사를 정말 많이 다녔다고 하더라고요.

보직에 따라 이사를 다녔으니까요. 81년에 결혼해 98년에 전역했으니 그동안 열일곱 번 정도 옮겨 다닌 것 같아요. 주민등록 초본을 떼면 2장이 넘어가요. (웃음)

Q. 일 년마다 이사를 한 셈이네요. 정착한다는 기분을 느끼기 힘들었을 것 같아요.

가장 큰 문제는 교육이었어요. 당시엔 지금 같은 돌봄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도 않았기에 동료들이나 부하들 집에 아이를 맡겼어요. 교육에 힘쓰기 좋은 환경은 아니었죠. 우스갯소리로 계속 이동하는 장군들은 애들 교육을 잘 못 시키고, 부사관들은 그 반대라는 말을 하기도 했어요.

그래서 아이들에게 친구가 별로 없어요. 뿌리를 내리기도 전에 이사를 갔으니까요. 그게 가장 아쉬워요. 일찍 전역하고 한곳에 머물렀던 친구들은 비교적 안정된 삶을 살았는데, 우리는 그렇지 못했죠. 그런 상황 속에서도 의지 있게 잘 커준 아이들에게 고마울 따름이에요.

Q. 요즘 젊은 세대에서는 ‘영끌’이라는 단어가 유행이에요. 그만큼 주거에 대한 불안이 커지고 있다는 것인데요. 현기 님에게도 비슷한 불안이 있었을 것 같아요.

요새는 분양받는 게 복권 당첨과 비슷하다고 하잖아요. 공동체 안에서도 중간에 분양권을 따내 나가려는 사람도 있을 테죠. 자식이라도 윤택하게 살게 해주려는 마음이 있기에 저도 거기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처음 입주했을 때는 그런 마음이 더 크기도 했고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곳의 가치를 믿게 됐어요. 이런 상황 속에서도 여전히 공동체를 신뢰하는 사람들이 있고, 공동체를 위해 헌신하는 사람들을 목격하게 되면서요. 이를 바탕으로 시니어 모임에서도 ‘이 정도면 괜찮다, 기대를 걸어도 좋은 공동체다’라는 인식을 주지시키고 있어요.

Q. 쉽게 예측할 수는 없겠지만, 꿈꾸고 있는 미래가 있을까요?

현재는 돌봄의 문제에 집중하고 있어요. 부모들끼리 아이를 봐주는 문화가 조금씩 확산되고 있는데, 그 영역을 넓혀 시니어들이 손주처럼 돌봐 줄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싶어요.

나아가 배우자를 먼저 떠나보낸 사람들끼리 공동생활을 한다든가, 난치병에 걸려 더 이상 공동체에서의 어울림이 힘들 때 이들을 보살펴줄 수 있는 요양 시설까지 바라보고 있어요. 그렇게 된다면 말 그대로 요람에서 무덤까지 공동체 안에서 해결할 수 있게 되겠죠. 필요하면 노인들에게 필요한 정형외과, 정신과 의사분들과 MOU를 맺어 보다 저렴한 가격에 진료를 받을 수 있는 시스템도 구상하고 있고요. 실제로 조합원 중 한의사가 있어 다른 곳보다 저렴하게 진료를 받을 수 있기도 해요.

중요한 것은 공동체의 가치를 만들어내는 거예요. 공동체의 일은 공동체 안에서 해결하려는 태도가 그중 하나라고 할 수 있겠죠. 우리 공간에 책임감을 가져야 해요. 이를테면 우리 아파트의 청소는 우리가 도맡아 하는 거예요. 장기적으로는 누군가에게 용역을 맡기는 형태가 아니라, 아파트에 거주하는 시니어들이 직접 아파트의 환경을 정비하고 미화하는 모델을 구상하고 있어요. 이를 위해 전문 청소 업체를 통해 교육을 마친, 총 여섯 분의 시니어들이 청소 작업을 시작하셨고요.

우리는 청소 노동자들을 홀대하는 경향이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우리의 일이에요. 청소에 참여하시는 분들께는 시간과 노동에 맞는 보수를 책정해 드리고 있어요. 봉사와 수익이 함께하는 셈이죠.

Q. 카페에서 바리스타를 하시는 분들도 그렇다고 알고 있어요.

맞아요. 직무에 해당하는 교육을 이수하고, 봉사와 소정의 수익을 함께 해 나가는 문화가 정착되어가고 있어요.

Q. ‘우리의 문제는 우리가 해결한다’는 태도가 인상적이에요. 인터뷰했던 분들이 이곳을 마을 혹은 가족이라고 표현했던 것이 기억나네요.

우리보다 젊은 사람들이 발 벗고 나서 꽁날(장터), 마을 결혼식 등의 행사를 주최한다는 사실이 고무적이에요. 현재 근거리에 위치한 청과물 등을 공급하는 생협도 조성되고 있고요. 가지고 있는 물건과 재능을 기꺼이 공동체에 공유하는 문화는 농사일을 공동으로 책임 지던 두레를 떠올리게 하네요.

Q. 입주 후 계절이 하나 지났을 뿐인데 많은 것들이 변하고 있는 것 같네요. 시니어 모임에도 변화가 있나요?

어떤 분들은 처음 보는 사람들과 잘 어울릴 수 있을지를 걱정해요. 그래서 혼자 아침 산행을 나서는 분들도 있고, 둘레길을 걷는 분들도 있더라고요. 동아리 활동은 그렇게 흩어져 있는 활동을 하나로 모으는 데에 의미가 있어요. 현재 ‘하루 만 보 걷기 동아리’, ‘하루 천자 쓰기 동아리’, ‘독서 동아리’가 활성화되어 있고, 흩어져 있던 시니어들도 자연스럽게 흡수되고 있어요. 다양한 배경과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풍부한 대화를 나누면서 서로의 위안이 되어준다는 사실이 가장 보람차요.

물론 모두가 시니어 모임에 참여하는 것은 아니에요. 음지에 있는 사람들을 강제로 끌고 갈 순 없으니까요. 다만 단톡방이나 카페를 통해 홍보를 하고 있어요. 먼저 참여한 사람들의 경험을 공유해 조금씩 독려하고 있죠.

Q. 이야기를 들어보니 모두 ‘더 나은 삶’을 고민하고 계신 것 같아요. 모임의 가치를 강제로 주입하기보다 살갑게 독려해 주는 것도 인상적이고요.

타인을 포용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먼저 차이를 인정하고, 배려하며 솔선수범할 수 있어야 해요. 60+센터 앞에 있는 텃밭도 재능 있는 분들이 경험을 나누고, 누군가 일손을 거들면서 만들어낸 결과예요. 이렇게 함께 무언가를 일구어 나가면 모두 언젠가는 함께한다는 것의 의미를 깨닫지 않을까요?

Q. 현재의 모임 활동은 대부분 ‘백 개의 학교’라는 테두리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이것이 흩어져 있는 구성원들을 공동체로 포섭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맞아요. 무겁고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 공동체 활동을 소모임으로 진행함으로써 구성원 각자가 그리는 공동체상을 조율해 나가는 거예요. 누구나 가르칠 수 있고, 누구나 배울 수 있죠. 그렇게 이웃을 만나며 공동체에 대한 기대가 생기고, 협동조합의 가치를 알아가는 거예요. 마을 교육공동체의 플랫폼인 동시에 사람을 성장시키는 플랫폼이기도 하고요. 우리는 시니어에 특화된 모임이 열리고 있어요.

입주한 지 오래지 않다 보니 하자, 보수와 관련된 공동생활의 문제들이 카페에 많이 올라오곤 했는데요. 눈살을 찌푸릴 때도 있었지만, 서로의 입장을 드러내고 소통하다 보니 매듭이 풀려가는 게 느껴져요. 특히 모임 활동으로 이해의 폭이 넓어진 것 같아요. 다양한 사람을 만나, 그들의 삶을 간접 체험 할 수 있으니까요.

Q. 요즘 은퇴 후 활발하게 자신의 삶을 꾸려가는 액티브 시니어가 늘어나고 있어요. 시니어로서 추구하고 있는 삶의 방식이 있나요?

오랜 시간 조직에서 생활하다 보니 은퇴 후 편하게 연금을 받아 생활하면 되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입주 후에도 굳이 커뮤니티의 일에 관여해야 하나 하는 안일한 마음이 있었고요. 이 나이에 청소를 한다는 것에도 거부감이 들었죠. 그런데 은퇴 후 활동이 줄어들고, 그런 삶에 안주하다 보니 몸과 마음이 약해지고 있다는 걸 느꼈어요.

다시 한번 말하지만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 중요해요. 사람들이 모여 한마음으로 움직이면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어요. 이를테면 크게 불편하지 않은 한, 몸을 움직여 마을을 청소하며 자급자족이라는 가치를 실현하고 작은 소득도 챙기는 거예요. 60+센터가 들어서기 전, 계룡건설의 사무실로 쓰였던 이곳에는 휴게실이 있는데요. 이를 라운지로 바꿔 조금 더 역동적인 활동의 공간으로 만들 생각이에요. 나아가 마을 택배, 중고 서적 판매 등의 일자리 또한 구상하고 있고요.

시대는 변하고 있고, 우리는 그 흐름을 봐야 해요. 그러기 위해서는 몸과 마음을 돌볼 수 있어야겠죠. 시니어 모임에서 이뤄지는 만보 걷기, 천자 쓰기, 독서 모임 등의 백 개의 학교 활동은 바로 이런 상황을 고려해 기획된 것이고요. 아침 일찍 일어나 마을 근처를 걸으며 건강을 다지고, 독서와 필사로 치매를 예방하는 거예요. 매일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면 건강에도 좋아요.(웃음)

Q. 60+센터를 다른 아파트 형태에 대입해보면 경로당의 위치라고 생각되는데요. 휴식을 취하는 곳으로서의 경로당이 아닌, 끊임없는 배움과 활동이 일어나는 점이 큰 차이 같아요.

우리 목표는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활동하는 거예요. 여기서 일어나는 모든 활동들을 혼자 하기란 쉽지 않겠죠. 그러나 함께 하기에 그 허들이 낮아지고, 교감을 통해 공동체에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어요.

입주했을 당시와 지금의 사고를 비교해보면 조금 달라진 것 같아요. 위스테이 바깥의 아파트값이 오르든, 내리든 신경 쓰지 않게 됐죠. 24시간 나를 위해 살고, 내 삶을 영위하는 데에 보람을 느껴요. 그게 가장 큰 변화죠.

Q. 어떻게 보면 삶의 중심이 ‘집’에서 ‘나’로 옮겨온 것 같아요. 모임을 주최하고 구상하는 것으로도 많이 바쁘실 것 같은데, 평소에는 어떻게 지내세요?

주로 가족과 함께해요. 시간이 나면 책을 읽거나 둘레길을 돌고요. 지금은 이런 개인적인 루틴이 모임 활동으로 승화되고 있는 과정에 있어요. 모임 활동만으로도 하루가 짧거든요.(웃음) 바쁜 일정으로 움직이다 보면 정신건강도 더 좋아지는 것 같고요.

Q. 구상 중인 활동이 더 있을까요?

공유 주방을 통해 조식을 만들어주는 서비스를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미리 신청받은 메뉴를 공유 주방에서 먹거나, 집으로 받아볼 수 있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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